hamagom 2016. 9. 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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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밟고 걷던 높이 쌓인 눈과 
달빛 아래 잠긴 상어의 속삭임 
너의 우주선을 뒤쫓던 경찰차 
술병 위에 어린 너만의 보조개 

지친 몸을 끌고 마주친 비단뱀 
아주 약간 남은 더러운 시간들 
적당하게 맑은 적당하게 슬픈 
적당하게 패인 너만의 보조개 

난 밤새 춤을 췄어 
영혼을 팔았어 
노래를 불렀어 
모두를 죽였어 
우주를 날았어 
사랑을 버렸어 
비단뱀을 샀어 
눈물을 감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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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왜 그랬어? 
왜 애초에 그런 말을 했어?
이렇게 이 시간에 찾아올 거면서 
비는 또 왜 맞았어? 
너 지금 무슨 드라마 찍어?
그렇게 걸친 것도 없이 얇게 입고서 
왜 그러고 섰어? 들어와
얼른 들어와 씻어 보일러 켜놨어
나 내일 일 있어 어제도 잘 못 잤어
나 잘게 씻어 거실 불은 니가 꺼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그러게 왜 그랬어? 
왜 애초에 그런 말을 했어?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질 못할 거면서
아 또 왜 울어? 
나는 뭐 괜찮아서 이래?
그렇게 모진 말도 잘만 했었으면서 
왜 그러고 섰어? 일루 와
얼른 일루 와 

이렇게 안고 있으면 미친 듯이 좋은데

맨날 왜 그래?
맨날 왜 그래? 
뭐가 맨날 이렇게 힘들어?
너랑 나는 왜
맨날 똑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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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쿨쿨 자나봐
문을 쿵쿵 두드리고 싶지만
어두컴컴한 밤이라
문자로 콕콕콕콕콕콕 찍어서 보낸다

웬종일 쿵쿵대는 내 맘을
시시콜콜 적어 전송했지만
너는 쿨쿨 자다가
아주 짧게 ㅋ 한 글자만 찍어서 보냈다

크크크크 크크 크크 크크 크크
큰 걸 바라지는 않았어
맘맘맘마 맘마 맘마 맘마 맘맘
말 같은 말 해 주길 바랬어
ㅋㅋㅋㅋ ㅋㅋ ㅋㅋ ㅋㅋ ㅋㅋ
빵 터진 것보다야 나은가
ㅋㅋㅋ도 ㅋㅋ도 아닌 한 글자에
눈물 콱 쏟아져 버리고 말았네 

웃음을 많이 섞으니까는
장난스럽게 보였겠지만
정성스럽게 적었던 거야

나는 마치 콩을 젓가락으로 옮길 때처럼
이모티콘 하나마저 조심스럽게 정했어 
나는 큰 결심을 하고서 보낸 문잔데
너는 ㅋ 한 글자로 모든 걸 마무리해버렸어
이제는 퀭 하고 시뻘개진 내 눈에 비치는 건
완전히 쾅 닫힌 대화창뿐이네

크크크크 크크 크크 크크 크크
큰 걸 바라지는 않았어
맘맘맘마 맘마 맘마 맘마 맘맘
말 같은 말 해주길 바랬어
ㅋㅋㅋㅋ ㅋㅋ ㅋㅋ ㅋㅋ ㅋㅋ
빵 터진 것보다야 나은가
ㅋㅋㅋ도 ㅋㅋ도 아닌 한 글자에 
눈물 콸콸콸콸콸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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