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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6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p. 8 내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선, 나는 파리의 도서관들을 빠짐없이 뒤졌고, 센 강 우안과 좌안의 모든 헌책 장수들과 얘기를 나눴으며, 그의 책이라면 갖가지 판형의 것들을 모조리 사들였고, 그의 전기 두 권을 탐독했다. 그가 러시아 태생임을 알고 나서는, 청어와 보르시치를 좋아하게 되었고, 싫어하던 보드까를 단숨에 털어 넣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의 출판사의 추근추근 물고 늘어진 끝에, 그가 점심 식사를 하던 장소들을 알아내고는, 그곳을 차례로 찾아다녔다. 브레아가의 <리프>에서 <르 프티 도미니크>에 이르는 그 탐방은 일종의 성지 순례나 다름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모두들 그가 즐겨 앉던 식탁이며 그가 먹던 음식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식탁>을 요구했고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의 전기 중 한 권에서, 그의 아버지가 에이젠쉬쩨인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였다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는 샤요의 시네마테크에 관람 신청을 해서 에이젠쉬쩨인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 그 아버지의 눈 속에서 아들의 눈길을 느껴 보리라는 바람에서였다. 나는 그가 살았던 그 사람의 거리, 곧 바크 가에 있는 계단은 죄다 밟아 보았다. 심지어는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다던 여배우와 비슷해지려고, 내 머리털을 금빛으로 물들일 생각까지 했다.


p. 9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였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인데, 그가 쓴 책이 서른한 권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이미 여섯 권을 읽었으니, 1년에 한 권꼴로 읽는다 해도 쉰살이면 끝이 난다. 그럼 그 후엔 어떡하나?


p. 14 나는 책읽기를 다시 배우러 온 거야. 그럼으로써, 그 사람이 내게 예정된 유일한 작가가 아니며 나를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다른 작가들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해.


p. 21 게다가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내가 숭배하는 작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 싶으면 우엇에든 흥미를 느꼈듯이, 나는 그 소설에도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


p. 56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 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p. 74 <나는 애정 어린 포옹이 어찌나 그리웠던지 하마터면 내 목을 조를 뻔했다.>

(그로-칼랭 중)


p. 75 나는 빨대로 우유를 마셨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p. 76 한 마디로, 나는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p. 82 그가 가고 나면 설거지는 내 몫이었고, 그렇게 접시들을 더렵혀 설거지 거리를 남기고 가는 그가 은근히 원망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83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뜸을 들인 건 사실이고, 내가 텔렉스 팩시밀리 전화 등을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20세기 말의 여자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당장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p. 9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p. 98 나는 사랑이라는 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 108 나는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났다.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았다.


p. 109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 영영 그 궁지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 133 그가 데이트를 제안하자, 일거에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평범한 세계, 표준적인 세계로 돌아와 있었고, 그는 아무 남자라도 할 수 있는 일, 즉 여자에게 무얼 마시는 게 좋겠느냐고 묻고 나서 그걸 갖다 주고, 카페 탁자 위에서 여자의 손을 잡거나 여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사는, 그런 일을 하려 하고 있었다.


p. 136 그는 약속 장소며 시간의 결정을 내게 맡겼다. 나는 그런 태도가 마뜩치 않았다. <알사스 학교 앞에서 4시에, 괜찮죠? 그럼, 그때봅시다>라고 시원스럽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어디 아시는 데 있어요? 좋아하시는 게 뭐죠? 카페에서 만날까요, 아니면 찻집에서 볼까요?>라는 말 속에서 헤매고 잇었다.


p. 141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들은 서로 달랐고, <블레이드 러너>는 내가 아주 싫어한 영화였다.


p. 141 묘하게도 그의 뒷모습에 무척 마음이 끌렸다. 그의 걸음걸이는 <나는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걸을을 옮길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며 잘싹잘싹 소리를 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p. 148 엄마에게 전화를 하자, 그래서 스트레스에 대한 처방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어떤 꽃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으렴.>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개양비귀꽃을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파니의 처방을 알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통신 판매 상품 목록을 읽어 보라고 했다.


p. 156 파니는 그 가운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그 사람 물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 157 나는 빨래가 안 말라서 안달을 낸 게 아니라, 빨래가 다 말라 있을 그 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p. 160 누군가 나와 함께 숨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잠결에 나에게 안겨 오거나 내 몸에 부딪혀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p. 138 나는 토탈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물론, 떨어진다고 부서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레몬처럼 노래져서 온종일 스페인 어를 지껄이게 되니까 조심해야 돼.>


p. 138 돌아오는 길에 나는 루카가 토탈과 의사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끔 일본어 두 마디를 가르쳐 주었다. <여보세요>를 뜻하는 <모시모시>와, 물고기가 너무 말썽을 피우면 그 말을 써서 잠잠하게 만들라고 <스시>를 가르쳐 주었다.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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