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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독서를 많이 한 편입니까? =많이 읽은 친구들에 비하면 턱도 없죠. 즐겨 읽긴 했는데 어머니가 학업과 무관한 책 보는 걸 말리셨어요. 그래서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다림이 컸죠. 그런데 80년 3월에 입학을 해보니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본래 늦되는 편이라 학생운동에 동참하는 데에 갈등이 있어요. 공부 좀 해보려고 했는데 방해받는 게 싫었고, 고교 시절 교련 과목이 싫었듯 대열에 서기 싫은 저항감이 있었죠. 그러다 81년에 경제학과 4학년생이 도서관에서 투신했어요. 공부만 하던 선배였다고 했어요. 이게 뭔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판단과 행동을 가속한 사건이었죠.


10년 전 기사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4143


-번역 작업의 일반적 순서가 궁금합니다. 일단 책을 통독하고 일을 맡을지 결정하시겠죠?=과거에는 책을 선정하는 일도 맡는 번역자가 더러 있었고 지금도 기획을 겸하는 훌륭한 번역가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요즘은 주로 출판사가 에이전시를 통해 책을 선정합니다. 책을 받으면 빠르게 읽으면서 할 만한지 살피고 답을 드립니다.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죠. 전 둔한 편이라 읽어서는 감이 안 오고 손으로 옮겨봐야 알겠더라고요. 보통은 절반가량 진도가 나가면 궤도에 오릅니다.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관념적인 명제보다 시시콜콜한 묘사가 옮기기 더 어렵지 않나요? 역서 중 책장의 역사를 다룬 <서가에 꽂힌 책>을 읽었는데, 중세의 사슬 달린 책장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옮기는 이가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묘사의 번역이 의외로 굉장히 힘들어요. 일단 이미지를 제 머릿속에 확실히 잡아야 우리말로 옮길 수 있고, 동시에 문체도 살려야 하거든요. 제일 싫어하는 내용이 음식과 옷이에요. 먹어보거나 눈으로 봤어야죠. 특히 여자 옷은. 번역뿐 아니라 작가들도 묘사력을 보면 재능을 가늠할 수 있어요. 묘사를 못하는 사람은 영어 자체가 꼬여서 이미지를 설득 못하거든요. 주장하는 문장이 훨씬 쉽죠.

-한 문화권에는 존재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등가물을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맞을 텐데요. 관직명도 그렇고요. =<번역어 성립 사정>이라는 일본에서 나온 책이 있어요. 민주주의, 연애 등 10개의 단어를 갖고 처음에 서양어로부터 어떻게 일본어로 번역됐느냐를 따진 책이죠. 예를 들어 경제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해서 쓰게 됐는지 알 수 있죠.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쓴 라틴어가 영어로 흘러드는 과정에 관한 책도 있어서 한때 이 두권의 책을 엮어 번역해볼까 하는 구상도 있었어요. 일본 책이 먼저 나와서 무산됐지만.



-선생님은 유학도 간 적이 없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지도 않는데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온갖 투자와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면 비결을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언어에는 끈적한 속성이 있고 해당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 있죠.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건 좋은데 그걸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물건을 사고팔려는 건지, 철학을 하려는 건지, 연애를 하려는 건지. 그런 요소가 있으니 제가 번역을 하고 있겠죠? 외국 거주 경험이 없고 이중언어 사용자가 아니면 번역을 못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낄 자리가 없겠죠.




-혹시 반대 방향의 번역, 한글을 영문으로 옮기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여러 설이 있지만 모국어가 도착어(번역문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번역이 아트(art, 예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래프트(craft, 장인의 기술)는 되는 것 같아요. 즉 결과로 나오는 언어를 세공해야 한다는 뜻인데, 세공은 모국어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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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그저 아는 선생님의 독일인 남편으로만 알고 있던, 알프레드님. 우연히 보게 된 인터뷰에서 재밌는 것들. 

'한국여성의 아름다움과 그 특징은 뭐죠?' 같은 바보 질문은 뭘까. 




- 1967년 작성한 '예술종합론(On Synaesthetics)'의 골자는 뭔죠? 
"하나의 예술을 깊이 파고들어가다 보면 탈장르, 다원예술 등이 가능하다고 본 거죠. 음악, 미술, 시(詩)가 다 통해요. '칼 융'이 말하는 경계와 국경이 없는 '집단무의식'이 바로 그런 것이죠. "음악은 '생각하는 소음'이다"라는 위고의 말을 인용하셨는데 그게 종합예술이죠. 그는 문학가지만 상당히 멀티한 예술가예요. 시만 아니라 음악, 연극에도 관심이 있었죠. 그의 생각은 당시보다 오늘날에 더 맞아요"



- 한국여성의 아름다움과 그 특징은 뭐죠?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한국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개성과 인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죠. 통역을 맡은 아내 이순주 작가(프랑크푸르트 국립미대 졸업 '한예종'에서 10년 간 미술 강의)도 자신은 외계인인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농담을 하면서 한마디 거든다. "서양남자들 오리엔탈리즘이 있지만 누구를 사랑하는데 국적은 무슨 의미가 있나"고 한마디 던진다.(웃음)"



- 한국이 이해하기 힘들어 더 매력적이라고 했는데 그 포인트는?
"여러 나라 연주여행을 했지만 난개발이 문제지 한국풍경이 좋고요. 물, 산, 바다 좋아요. 황사, 장마가 불편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과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개인적 설명할 수 없는데 '하이브리드'한 성격 '오래된 것과 첨단의 것', '동양과 서양',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등이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점 무질서한 혼란이 주는 역동정이 있어요. 그리고 백남준은 한반도에서 세상으로 나갔지만 저는 이쪽으로 왔잖아요. 

여기서 정신적으로 영양가 있는 시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암기식 공부를 한 적이 없어 한국어 습득하려니 잘 안돼서 요즘은 언어보다 한국의 고요함을 들으려고 해요. 의미보다 소리를 중요하죠. 그게 더 소통이 잘 될 수도 있고요. 중년 후반에 한국에 온 이유는 독일사람 이미지 벗어나서 유명세 뭐 그런 거 사라져도 상관이 없어요. 사라짐으로 나타나는 역설도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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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무라 미나에 <본격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폴 오스터 <hand to mouth> (한국어 <빵 굽는 타자기>)

김연수 <소설가의 일>

- 이건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앞부분 조금 읽고, 최근에 서점에서 훑어보기만 했다. 

김연수 문체는 어쩐지 적응이 안되어. 늘 들떠있는 것만 같은 기분. 


<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 손홍규에 대해서 후배 작가가 쓴 거였는데 이름을 잊었다. 이것 역시 서점에 서서 읽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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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밑줄을 칠 수 없는 책이었고, 아주 오랜만에 소설 속 세계에 흠뻑 빠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미즈무라 미나에와 츠지 구니오의 필담에서 언급된 '청소년기에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축제로서의 책읽기'를 경험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다거나 대단한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은 해봤어도 작가가 똑똑하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서는 작가가 아주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 때문인듯하다. 그리고 첫 소설과 두번째 소설, 세번째 소설이 나아가는 방식이 흥미로워서. 책을 미친듯이 읽고 나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보통은 조금 묵혀두는 편. 이 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복선들을 확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사소설>을 읽고 싶은데, <본격소설>이 2008년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초판본이 아주 레어하게 돌아다닌 것을 보면 미즈무라 미나에의 다른 책들이 번역 출간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역시 일본어 읽기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순간. 






소설이란 사라져간 '시간'을 애도하고, 그럼으로써 지금 사라지고 있는 '시간'을 애도하며 아끼는 것을 가능케 하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한국어판 서문 중



어쩌다가 그 보물상자가 열리면 봉인된 '시간'이 그 혼란스러웠던 시대 고유의 그림자와 소리, 냄새와 더불어 어린 시절의 기억에만 깃드는 최상의 광휘와 함께 눈앞에 둥실 솟아오른다. 



일본에서 막 온 일본인은 백화점의 새 포장지로 감싼 것처럼 일본의 공기에 싸여 있는 법인데, 젊은데도 불구하고 지친 인상의 이 남자는 이미 정신이 이국의 어딘가에 침식되기 시작한 듯했다.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걷거나 레스토랑에 들어가거나 할 때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용모들이 수려해졌구나, 저러면서 머리까지 절망적으로 텅 비어 있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하고 늘 내가 감탄하거나 저주하는 일본의 젊은 남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 뵌 적이 있었던가요?

- 아뇨. 

남자는 조금 수줍어하면서 웃었다. 

거기에는 젊은은 있었지만 뻔뻔함은 없었다. 



유스케는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 일본이 멀어져버렸어요. 



유스케가 갑자기 말을 이었다. 

- 미즈무라 선생님 책을 읽었습니다. 

- 네. 

- 두 권 다 읽었어요. 

- 감사합니다. 

- 저는 대단히...

잠시 말을 찾다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가장 무난한 표현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자동적으로 되풀이했다. 남자가 내 소설에 관심이 있어서 온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찾아오기까지 했으면 조금 더 자세한 말을 하는 것이 소설을 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인사가 아닐까. 



나는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내 소설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잠시나마 불만을 느꼈던 것도 잊고, 그가 요즘 일본문학에 흥미가 없다는 것, 즉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새로운 소설가들의 이름을 늘어놓아 나의 무지함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할 우려가 없다는 것에 안심했다. 




일본 소설가뿐만 아니라 비서양 언어로 글을 쓰는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시도는 일본 근대문학의 큰 흐름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큰 흐름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멀리서부터 '도쿄온도'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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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는 기본적으로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상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단가 형식의 기본이다. 따라서 짧은 단어에서 그 느낌을 해석해내는 독자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시형이기도 하다. 

- <시간이라는 추>에서


가능하면 영화에서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표현해보고 싶다. 문장에서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보는 이들이 상상력으로 빈 곳을 채우는 식의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메시지라는 말은 정말이지 친해지기 힘든 단어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신작 영화를 홍보할 때면 몇 번이나 그런 질문을 되풀이된다. 아, 곤란하다 곤란해... 애초에 내가 이 영화에 메시지란 걸 담았던가. 



"시는 메시지가 아니다. 메시지는 의식한 것에 불과하지만 시는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 씨는 한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작품에 이야기할 만한 메시지라는 것이 포함돼 있다면, 그것은 만든 사람이 아닌 독자나 관객이 발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예나 지금이나 내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TV 다큐멘터리로 이 일을 시작한데다,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모델이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를 찍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 




연출론을 깊이 파고들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도마 위에 오른 프로그램의 연출이 너무 치졸해, 어찌해도 연출론으로는 발전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노다 마사아키 <상중에>



기분은 좋지만 슬프다는, 슬프지만 우유는 맛있다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알게 된 걸 성장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어린 시절, 아직 집에 냉장고가 없던 때의 일. "아이스크림 먹고 싶네"라는 말이 나오면 어머니에게 50엔을 받아들고 집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잡화점으로 달려가, 하나에 10엔 하던 컵 아이스크림을 다섯 개 샀습니다. 벌써 40년도 더 된 일이라 컵 색깔이 파란색이었는지 노란색이었는지, 모리나가 표였는지 유키지루시 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었던 10엔짜리 동전의 감촉과, 잡화점 밖에 놓여 있던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열 때의 냉기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쇼난 '지가사키관' 여관


가고시마 명물 '가루칸'



영화 속에 그려진 날의 저날에도 다음날에도 그 사람들이 거기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온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 줄거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내일을 상상하고 싶게 하는 묘사. 그 때문에 연출도 각본도 편집도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무대에서는 그렇게나 가볍게 움직였는데, 대조적으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손이나 발, 눈조차도. 언제 움직이나 하고 가만히 응시했다. 카메라를 정면에 두고 클로즈업하는 장면을 찍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라고 한마디. 그리고 또 히죽 웃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면, 그건 아니다. 모든 것은 사소한 움직임과 움직임의 사이에서 표현된다. 대사와 대사 사이. 움직이기 전에 멈춰 있는 약간의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으로 당황스러움과 친절함, 유머를 멋지게 나눠 연기한다. 깎아내고 깎아내지만, 그럼에도 정적이지 않다. 

(하시즈메 이사오에 대해)




대개 사람들은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우가 영화의 주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주연은 화면에 잡히지 않을 때도 그 영화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좀 멋지지 않은가, 이런 말투. 대체 무엇을 지배하는가 하면, 그것은 영화의 톤이나 리듬이나 템포 등이다. 무슨 리듬이냐면, 대사와 액션과 감정과 때로는 편집의 리듬이다. 



소문대로 철도를 좋아했다. 인터뷰어가 전차의 매력에 대해 묻자 그의 한마디.

"나만의 것이 되지 않는 점이에요. 거기에 낭만이 있습니다."

(쿠루리의 기시다 시게루)



단적으로 말하면 상영중의 야유에 가까운 웃음에서는, 양질의 지성이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거북함은 거기에서 기인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부시가 상대를 업신여길 때 짓는, 품성이 결여된 경박한 웃음과 어딘가 깊은 곳에서 통하는 게 아닐까. 



"당신은 영화의 등장인물을 도덕적으로 심판하지 않는다. 아이를 버린 어머니도 단죄하지 않는다"였다. "영화는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감독은 신도 판사도 아니다. 악인을 설정하는 것으로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지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에까지 끌고 들어가도록 할 수 있지 않나 싶다"라는 게 내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이클 무어의 자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봤을 때 <화씨 9/11>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숭고한 뜻에 힘입었대도, 찍기 전부터 결론이 먼저 존재하는 것을 다큐멘터리라고 부르지는 않으련다. 찍는 것 자체가 발견이다. 프로파간다와 결별한 취재자의 그런 태도야말로 다큐멘터리라는 방법과 장르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축제니까 배당금을 걸고 내기 대상으로 삼거나, 영화 평점의 별 개수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즐기는 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레이스'만으로 시야를 좁히면 영화제의 본질을 오인할 수 있다. 우열을 겨룬다는 직선적인 감각은 영화제에 참가하는 나의 마음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사실은 좀더 풍요롭고 복잡한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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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르의 시나리오와 영화에서 대사의 비중은 자주 언급된다. 로메르는 대사를 흥미진진하고 영화적이라고 간주하며, 대사를 쓰는 것이 시나리오를 위한 시발점이 되는 개념을 찾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한다. 

(피오나 핸디사이드 서문)




늘 영화에 관심이 있었나요?

아뇨,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아주 늦게, 학생 시절에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영화를 멸시했고 좋아하지 않았어요. 독서와 미술,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음악을 좋아했을 뿐이죠. 연극에는 참여한 적이 없고 보러 간 적도 많지 않아요. 라신, 코르네유, 몰리에르 같은 프랑스 고전 희곡을 좋아했지만 보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했죠. 영화는 시네마테크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무성영화들을 좋아해서 영화를 좋아하게 됐지만 단지 극장에 가는 것만으로 영화를 발견한 건 아니었어요. 



두 여자 사이에서 주저하는 남자라는 개념이 '도덕 시리즈'의 모든 영화들 간의 연결 고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자는 사실 주저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그가 선택을 하고 마음을 먹은 바로 그 순간, 다른 여자가 등장해버린 겁니다. 어떤 종류의 갈등도 실제로는 없고, 그런 상황은 남자의 선택을 확고하게 해줄 뿐이에요. 일례로 <수집가>에서 남자는 단지 여자와 일주일을 지낸 후 떠납니다.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에서도 남자에게는 모험일 뿐, 한 여자와 다른 여자 사이에서 주저하지는 않아요. 만약 그가 모드와 관계를 맺었다면 일주일 지속된 후 끝났을 겁니다. 내 최근작에서도 주인공의 선택은 이미 끝났고 그는 결혼을 할 겁니다. 그가 모험을 즐긴다면 그건 모험 외에 아무것도 아닌 거죠. 


이 연작을 시작할 때 소재에 대해 정확한 개념들을 갖고 있었나요?

네, 오랫동안 마음속에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고, 연작을 시작했을 때 각 '이야기conte'의 주제가 뭐가 될지 알고 있었죠. 그러나 발전시키지 않은 상태였고, 아직 극히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내가 무엇보다 주안점을 둔 것은 검정과 하양, 빛과 그림자 사이의 대비를 탐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컬러란 모름지기 영화에 뭔가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흑백을 선호해요. 왜냐하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흑백은 일종의 기조, 통일성을 부여하며, 이는 컬러를 잘못 쓰는 것보다 영화에 훨씬 더 유용하거든요. 



'도덕 이야기'에서 '도덕'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의미하는 바는 뭔가요?
프랑스어에는 영어로 정확히 번역되기 힘든 '모럴리스트 moraliste 인간성을 탐구하는 사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럴(도덕/교훈)'이라는 말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럴리스트'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을 의미해요. 마음 상태와 느낌에 관심을 갖죠. 예를 들어 18세기 파스칼이 모럴리스트였습니다. 특별히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 라브뤼에르나 라로슈푸코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 모럴리스트라고 하고, 스탈당 또한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묘사하므로 모럴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 하지만 '모럴'은 또한 그들이 자신의 행동 동기, 이유들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들을 분석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캐릭터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위 자체보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예요.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언어의 문제도 있어요. 난 대화, 스타일, 음질, 억양에 많은 중점을 두고 그것은 매우 중요해요. 프랑스어는 내 영화들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난 작가이기도 하며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작가로서 프랑스어는 내게 중요해요. 뭔가를 쓴 후에 다른 누군가에게 번역을 맡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영화의 저자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난 프랑스에서만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또 다른 예로 히치콕 같은 미국 감독들을 존경하지만 그들에게서 실제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만약 영향을 받았다면 그건 상당히 무의식적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존경하는지는 말할 수 있으나, 영향력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각자의 반응은 유일하고 개인적이며 서로 달라야 합니다. 난 관객들이 서로 너무 가까이 앉지 않고 극장이 너무 꽉 차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모를 때 영화를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각자 상이한 반응을 하게 되요. 그것이 획일화된 반응이 일어나는 극장보다 낫습니다. 난 대중과 함께 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모두 같은 지점에서 웃으면 고통스러워요. 그렇게 작정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내가 단지 모두를 동시에 웃기려고 뭔가를 쓴 건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 미소 짓는 건 괜찮지만 영화의 정확하게 똑같은 데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마 내 영화들이 공연을 관람하는 것보다 독서와 더 유사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무대 위의 뭔가를 보는 것보다 책처럼 읽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거죠. 그래서 집단적인 반응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어떤 소재가 관객에게 가장 어필할지를 계속 자문하는 대신, 동일한 소재를 여섯 번 다루는 것이 최선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죠. 여섯 번째가 되면 관객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나는 여전히 10년 전 나 자신을 위해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융통성 없이 고지식해지리라고 마음먹었었는데, 한 가지 아이디어를 계속 고집하면 결국 지지자들이 생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죠. 심지어 배급사조차도...... 독립된 한 편의 시나리오보다는 여섯 편으로 구성된 연작의 시나리오를 문제 삼거나 비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내 작업은 연극과 같은 다른 형식의 엔터테인먼트보다는 소설(현재 영화가 바통을 이어받은 특정한 어떤 고전 스타일의 소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게 그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나는 영화가 이미 연극에서부터 나아간 것보다도 더 멀리 영화를 끌고 가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캐릭터들이 말이 많을지 모르지만 연극이 성립되려면 대사만으로는 안 돼요. 내 캐릭터들은 전혀 연극 속의 인물들처럼 말하지 않아요.(적어도 그들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죠.)



왜 '도덕 이야기'의 편수를 한정하셨나요?

일단 이야기 연작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그것이 어디에선가 끝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가 '기이한 이야기의 남자'로 회자되는 의미로 내가 '도덕 이야기의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판타지, 스릴러, 역사 소설도 쓸 수 있어요.(그리고 언젠가 원하면 만들 겁니다.) '도덕 이야기'는 내게 하나의 주제이면서 동시에 주어진 주제의 변주인 거죠. 



계속해서 <수집자>의 보이스오프 장면들을 보면, 아드리앵이 매우 형식적인 18세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반면 대사는 항상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을 띠죠. 사고와 말 사이의 이분법을 암시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요?

...그러나 이분법은 확실히 의도된 겁니다. 옳든 그르든 나는 톤에서 그런 차이가 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프레임워크는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감독님이 선택한 것 이외의 세팅에서 인물들을 상상할 수는 없거든요. 인물들과 세팅을 절대 분리하지 않으시더군요. 

정확하게 그래요. 그리고 네스토르 알멘드로스의 카메라워크가 인물들을 풍경과 연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죠. 윤곽(아웃라인)보다는 형상을 부각하는 것과(모델링) 더 관련이 많은 카메라워크 유형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빛을 사용하는 화가들, 대상들 각각을 고립시키기보다는 빛에 빠뜨리는 화가들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대상을 분리하고 에워싸고 일종의 독립체로 만들어버리는 초현실주의적 트릭을 싫어해요. 내가 선호하는 화가들은 렘브란트나 터너 혹은 세잔입니다. 



그녀(주주)는 자신의 개인적인 색을 더했고, 바로 이런 점, 즉 존재하는 것들과 우리가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 조립하는 것이 영화에서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에요. 



그들은 사회적 압력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시도하지 않아요. 개인과 사회 간에 마찰이 없어요. 갈등은 오히려 캐릭터의 자유와 그가 자신에게 부과하는 규칙 사이에 더 존재합니다. 프레데리크(<하오의 연정>에 등장하는 남편)은 좋은 남편이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클로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고. 어떤 사회라도 원칙(그것이 무엇이든)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소재는 유효합니다.



"로메르는 손쉬운 아름다움을 피하면서도 모든 숏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내 최근 영화들과 아마 심지어 첫 영화에서도 캐릭터들이 자신이 사는 장소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들은 스스로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그곳을 좋아하는지 혹은 아닌지를 압니다. <비행사의 아내>의 경우가 그렇고, 폴린느와 루이즈도 마찬가지예요. 이는 유동성과 고정성 간의 갈등입니다.



안정과 불안정, 부동과 변화가 있습니다. <만원의 밤>의 루이즈는 어느 순간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내 차기작의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로 떠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녀의 인생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녹색 광선>의 여주인공이 염소자리라는 사실은 그녀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하죠.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의 '파란 시간l'heure bleue' 섹션은 점성술보다는 기상학에 더 많이 기대고 있고요. 그리고 <만월의 밤>이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영화에서 일종의 게임으로 보시는지, 아니면 정말로 감독님의 존재론적 관점의 일부인지요? '에리크 로메르는 가벼운 영화를 만들 때조차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세계관, 우주적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만한 사실을 담보한다'라는 의미인가요?

상당히 복잡한 문제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하셨으니 답할 수 있겠네요. 점성술을 그다지 믿지 않아요. 그것은 내 영화들에서 18세기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교적 초자연성과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 그러나 동시에 나는 게임에서처럼 초월성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요. 별이라는 테마를 내가 사용하는 방식은 이와 같죠. 그것을 믿지는 않지만 회의적이지도 않으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믿는 바를 내가 믿지는 않더라도.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그럴 욕망이 있고, 심지어 가장 최근 영화에서도 내가 원하는 바의 한계점까지 가봤습니다. 



그러나 흑백의 결정은 클레르몽페랑과 그곳 하면 떠오른 뭔가와 관련이 있어요. 클레르몽페랑은 검은 도시이며, 그 검정은 컬러필름을 사용했다면 노랗거나 보라로 보였을 겁니다. 나는 또한 영상에 일종의 얀세니즘적(인간의 구원이 개인의 선행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신의 은총과 선택으로만 가능하다는 엄격한 가톨릭 교리) 특징인 단순함을 부여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컬러의 디테일에 빠져 길을 잃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한 영화 안에는 어느 정도 통일된 색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통일되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영화가 연극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어요. 연극에서는 완벽한 조화, 극도로 조화로운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부수적인 색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어떤 부조화도 없이 너무 완벽하면 지나치게 인공적이 돼버려요. 



이 영화는 다소 삽화적인 구성을 띱니다. 이야기 한편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고, 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굴러갑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요. 심지어 이고르가 도착할 때도 영화는 진정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많은 정보들이 나중에야 제공되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영화가 하나의 긴 전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전적인 도입, 전개, 결말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아요. 내 예전 영화들을 포함해서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더, 각 액션의 조각이 다른 조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나는 약간 다른 무엇인가를 시도했고, 그것이 조금 지나쳐 보일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런 점이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에요. ... 나는 지나치게 빨리 소재로 진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이미지와 스크린상의 역동성의 관점에서, 침실에서 끝낼 수는 없었고 밖으로, 다른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 점이 또한 약간의 음악이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해요. 끝났다는 신호가 되는 것이죠. 



내가 '도덕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때 '희극과 격언'에 속하는 몇 편이 잉태 중이었음을 아실 겁니다. 실제로 그것들을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요. 마찬가지로, '희극과 격언'을 만들던 중에 '사계절 이야기'의 일부를 구상했습니다. 나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면에서 안티테제를 통해 전개해나가는 것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겨울 이야기>를 위해서는 <봄 이야기>의 이야기와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한 남자와 세 여자 대신, 한 여자와 세 남자)이면서 동시에 <녹색 광선>의 이야기에도 반대되는 이야기를 희미하게 구상했습니다. 왜냐하면 <녹색 광선>에서는 한 여자가 남자를 못 찾는 모양새인데, 여기서는 한 여자가 세 남자 중 못 골라서 문제거든요. 그 후 1980년대 초반 BBC가 공연하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후, 사랑받는 여인의 귀환으로 내용을 혼동해서 기억하고 있었죠. .. 바로 그때 사랑받던 남자의 귀환을 영화화하고, 그것을 셰익스피어를 참조하여 '겨울 이야기'라고 부르겠다는 생각을 했죠. '겨울 이야기'라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나자 '사계절 이야기'라고 부를 연작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따라서 <봄 이야기>를 구상하기 전에 <겨울 이야기>를 생각해낸 셈이지만 당시에는 그걸 언급하지 않았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막상스, 로이크, 심지어 펠리시조차 감동적이면서 비정하고, 짜증나면서도 사랑스럽습니다. 

내 아리스토텔레스적 측면이죠! 비극의 인물들은 전적으로 선하거나 전적으로 악해서도, 전적으로 유죄이거나 전적으로 무죄여서도 안 돼요. 예를 들어 위대한 할리우드 서부극들은 이 고전적 드라마트루기의 법칙을 준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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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산문집
돈을 열심히 버는데도 늘 돈이 없어 고민하다 안 사고 나왔다.

언젠가 선생님은 걔 몇년생이니. 왜 80년대에 태어난 애가 옛날 사람처럼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왜인지 거짓부렁이나 허세처럼 느껴져서 다시 박준의 시집을 읽지 않았다.

2012년 이후 나는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그래봤자 이삼년이려나. 글자 위를 눈알이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만 해서 글을 통 읽을 수가 없었다.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게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오랜만에 산문을 읽으니 처음 그의 시를 읽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 난다. 별 것 아닌 말에, 툭 치면 후두둑 할 것 같은 느낌.

다음에 돈이 들어와도 곧장 빠져나가지 않게 되면 사고 싶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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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18년을 했고, 앞으로도 그 정도 할 것. 

급할 게 없다. 평생을 하는 것. 


"여러분은 아직 안 해봤잖아요. 안 해봤는데 벌써 지쳐있어요. 문제에요."

미술은 그런 게 아니에요. 

운명이 막지 않는다면 계속 할 거에요. 

미술은 너그러운 거에요. 


"you gotta get old as an artist"

"네가 필요한 것을 만들어 그리고 그걸 놓고 싶은대로 놔"

->선생님의 선생님들



레퍼런스를 들고 오는 문제. 

말은 다른 사람이 해주는 직업인데 작가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커버레터 쓰는 것도 반대. 

learned words 사용하는 것->문제다

(사용하는 것 vs 아는 것은 다른 얘기.)

그런 power game에 휩쓸릴 필요 없어요. 


말로 너무나 clear해지는 것-> 의심해봐야 함.

설명이 안되고 수습이 안되도 괜찮다. 

서로에 대해 넓은 가슴을 가져야 한다. 


연연하지 말자. 현대미술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뭔가 가져왔을 때 그것을 누가 못 볼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 한 사람은 알아봐요.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지 말자.



미디움

미디움을 꽤 만져봤는데, 하는 느낌이 없다. 

비디오가 가져야 하는 form.

형식의 정교함이 없기 때문에 문제. 

보여주는 presentation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image language를 가져야 한다. 


it should be heard.

you should listen 이 아니라 it should be heard 다. 


미디움-> 편의점방식으로 미디움을 다룬 점, 필요할 때 집어서 쓰는 것-> disadvantage.


미디움이 무르익어서 생겨나는 언어 이전의 무엇이 있다. 


visual language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딱 보면 안다. 0.01초. 

미디움이 안되면, 하고 싶은 말 하기가 어렵다. 


미디움은 귀하게 선택해서 careful하게 쓰는 것이다. 



말에 dependant하지 않는 것. 

"저걸 왜 했을까?" 물어본다면 충분히 하지 않은 것. 이거 왜 했니?라는 질문 말고 그걸 한 과정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해야만 한다. 

no one wants to learn it. 



올해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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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하리쓰루(청주 이름)

-> 니가타현 무라카미시에 양조장이 있다. 


"온천에 들어가서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맛있는 술을 마시고 있으면,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p.8


기리에: 종이를 오려내어 사물의 형태로 만든 것. 또 그것을 그림처럼 구성한 것. 팬톤지.


"종종 '기존에 있는 그림을 사용했으면 좋겠다'하는 의뢰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대부분 다시 그립니다. 다른 일로 그린 그림을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것은 저의 원칙이 아니라서요!"

p.98


 安西水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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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

도시를 떠날 때 세 가지 목표를 품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독립된 경제를 꾸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불황을 타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생필품이나 노동력을 시장에서 사고 팔지 않는 독립된 경제를 계획했다. 그러면 고용주든 자본가든 정치가든 교육 행정가든 우리에게 간섭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건강이었다. 우리는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도시 생활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조이고 억눌렀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했다. 땅에 발붙이고 살고, 먹을 거리를 유기 농법으로 손수 길러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번째 목표는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많은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여러 가지 끔찍한 착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지구의 약탈자로부터, 사람과 짐승을 노예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고,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말이다. 


p.8

일곱, 해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여섯 달로 줄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여가 시간으로 정했다. 여가는 연구, 여행, 글쓰기, 대화, 가르치기 들로 보냈다. 


p.13

"친구여, 뚜렷한 근거가 떠오르거든, 어리석음이 더 커져서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그대를 묶어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라. 시골이라면 그대와 잘 어울릴 것이다. 나무와 물에게 그대가 필요하게 하라. 곡식이 영그는 땅에 그대의 보금자리를 만들면, 땅과 풀이 그대를 먹여 살리리. 벌판의 바람이 그대를 둘러싸리. 그대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질투를 마음에 두지 말고 흘러가게 하라. 신에게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자네, 이제 앉아서 쉬게나."

투서(Thomas Tusser), <좋은 놓부가 되는 오백 가지 방법 Five Hundred Pointes of Good Husbandrie>, 1573년


"내 목표는 독자들에게, 농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밭을 일구어 먹고 사는 방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마 살림을 꾸려 가기에 넉넉할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참으로 바라는 목표는, 뛰어나고 부지런한 농사꾼과 집안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마컴(Gervase Markham), <시골 농장 The Countrey Farme>, 1616년


"일어나 오라, 서둘러 오라, 우리가 도시를 내주겠다. 상인들에게, 변호사들에게, 중개인들에게, 고리 대금업자들에게, 세리들에게, 공증인들에게, 의사들에게, 향수 상인들에게, 정육점 주인들에게, 요리사들에게, 빵집 주인들에게, 재단사들에게, 연금술사들에게, 화가들에게, 배우들에게, 무용수들에게, 류트 연주자들에게, 야바위꾼들에게, 포주들에게 도둑들에게, 범죄자들에게,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게,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에게, 사기꾼들에게, 어릿광대들에게, 대식가들에게. 이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시장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시장만이 이 사람들의 하나뿐인 즐거움. 시장만 다가오면 입을 쩍 벌린다."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h), <고독한 삶 De Vita Solitaria>, 1356년


p.27

잡초를 뽑고 잔가지를 쳐 주기만 하면 벌목이 끝난 땅이라 해도 거기서 나온 나무들을 꾸준히 장에 내다 팔 수 있고, 한두 사람에게는 거의 무한정으로, 적지만 꾸준한 수입원이 될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전문 목재상보다는 훨씬 적게 벌겠지만, 그래도 남 밑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의 경제 형편에 맞게 일할 수가 있었다. 


p.31

"해가 뜨면 일하러 가고

해가 지면 돌아와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얻고

땅을 일궈 곡식을 거둔다. 

이처럼 우주의 창조에 동참하니,

왕이라 해도 이보다 나을 수 없다."

고대 중국, 기원전 2500년


"살아가는 방편을 터득한 채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농사짓는 기술을 터득한 채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삶의 방편이 다 그렇듯이 농사짓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아무렇게나 한 일에서 얻은 만족이 오래 가지 않듯이, 흙과 기후에 아랑곳하지 않고 뿌린 씨앗에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정한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루던(J.C. Loudon), <농업 백과 사전 An Encyclopedia of Agriculture>, 1825년


"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되는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 더 나은 것을 이루며 살겠다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더 나아지게 만든다."

헉슬리(Julian Huxley), <생물학자의 생각 Essays of a Biologist>, 1923년


p.34

십 년 계획

하나, 우리는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 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윤 추구의 경제에서 할 수 있는 한은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첫째, 우리 밥상에 올리기 위해 땅과 기후가 허락하는 한 곡식을 많이 가꾼다. 둘째, 거둔 곡식을, 우리가 생산하지 않거나 생산할 수 없는 곡식이나 물건들과 바꾼다. 셋째, 연료로 나무를 때며, 나무는 우리 손으로 해 온다. 넷째, 농장에 있는 돌과 나무를 써서 필요한 건물을 짓되, 반드시 스스로 한다. 다섯재, 썰매, 짐수레, 모래 치는 망, 사다리 같은 장비들을 만든다. 여섯째,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장비, 연장, 부속품, 기계 같은 도구는 되도록이면 적게 쓴다. 일곱째, 만일 쟁기, 트랙터, 경운기, 불도저, 기계톱과 같은 장비들을 한 해에 몇 시간이나 며칠쯤만 써야 한다면 그 기계를 돈 주고 사 오는 대신 동네 사람들에게 잠시 빌리거나 다른 것과 바꿔 쓴다. 


둘, 우리는 돈을 벌 생각이 없다. 또한 남이 주는 월급을 받거나 무언가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바람은 필요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손수 생산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노동을 하고 양식을 모았다면 그 다음 수확기까지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셋, 우리는 모든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우리가 가진 돈만으로 치를 것이다. 은행에서는 절대로 돈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땅이나 집을 담보로 넣어 융자를 얻은 뒤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넷, 우리는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확물로 해마다 봄이면 단풍 시럽을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 일을 할 것이다. 


p.39

먹고 남는 생산물을 다른 집에 나눠 주는 모습은 우리가 사는 골짜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릭스 나이트 씨에게는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배가 익으면 그이는 배나무가 없는 이웃들에게 궤짝으로 배를 나눠 주었다. 잭 라이트풋 씨는 우리에게 한 푼도 받지 않고 남는 사과를 따 가게 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웃들에게 전나무를 베어 가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장작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장작을 나눠 주고, 우리 밭에서 난 채소도 많이 나눠 먹었다. 가장 큰 즐거움은 스위트피가 자라면 그 꽃을 한 아름씩 꺾어다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스위트피를 꽤 많이 가꾸었는데, 해마다 20-30미터 길이로 두 줄이나 심었다. 꽃 피는 계절이 오면, 우리는 시내로 나들이 갈 때마다 바구니와 양동이에 수십 다발의 꽃을 담아 갖고 가서, 그 날 하루 아는 사람들은 물론 낯선 사람에게도 꽃다발을 나눠 주었다. 


p.40

일곱, 우리는 집짐승을 기르지 않을 것이다. 


'노예를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집짐승이 살아 있는 동안 양치기에서 푸줏간 주인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짐승의 하인일 뿐이며, 나중에는 집짐승의 사형 집행인이 된다." 버나드 쇼(Bernard Shaw)


p.42

여덟, 우리는 낡은 집들을 고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할 때까지는 그 집들을 그냥 쓸 것이고, 수리는 꼭 해야 할 때만 할 것이다. ...... 만일 그 집들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첫 번째 선택을 그것들을 부수는 것이다. 쓸모 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우리는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을 것이다.


"시골의 너저분한 곳을 새롭게 뜯어 고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얼핏 보면 그 일을 쉽게 해치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첼(D.G. Mitchell), <에지우드의 우리 밭 My Farm of Edgewood>


p.44

"밭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돌을 들고 오라. 밭에 돌이 많으면 그만큼 농사짓기가 힘들다. 일꾼들도 손에 돌을 들고 집으로 오게 하라. 날마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길에 깔기에도 멋지고 벽을 쌓기에도 좋은 돌을 많이 갖게 되리라."

투서


p.47

"내가 숲에서 살기를 다시 해 본다면, 작은 오두막이나 돼지우리 말고는 어떤 것도 통나무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통나무집들이 가장 지저분하고, 불편하며, 돈은 가장 비싸게 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터를 잡아 집 지을 준비를 갖추었다면, 마땅히 훌륭한 뼈대를 세우고 돌집을 짓도록 하라.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힘만 조금 들여 돌, 목재, 석회 같은 건축 자재를 끌어올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것들이 거의 '공짜'라고 말하는 것은 이 재료들을 돈 주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재료들은 식구들이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힘을 쓰면 얻을 수 있다."

스트리크랜드(Samuel Strickland), <캐나다 서부에서 산 스물일곱 해 27 Years in Canada West>


p.50

우리의 실천 계획을 적어 놓은 카드 목록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맑은 날의 일'과 '비 오는 날의 일'로 나뉘어 있고, '집 지을 계획'과 '완성된 작업' 따위의 항목이 있었다. 모든 작업 계획에는 특별한 목적으로 쓴 재료비와 지출한 돈을 적은 비용 카드가 따로 있었다. 채소밭 농사와 단풍 시럽 생산에 대한 내용을 따로 묶은 장부에는 사업 계획, 지금 하고 있는 일, 지난 해 기록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아서 영(Arthur Young), <농부들의 달력 The Farmer's Calendar>


p.52

"당신은 일꾼을 여럿 두듯이 철물점처럼 연장과 공구를 두 배로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웃에게서 아무것도 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 연장을 사러 돌아다니느라 하루의 중요한 일을 끝마치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마컴


p.54

하지만 기계가, 사람이 이루어 낸 더없이 역사가 깊고 멋지며 창조의 힘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대부분 쓸모 없게 만들거나 버려지게 했고, 이미 세워진 사회 제도를 해체하고, 수많은 '손'들을 공장에 밀어넣었으며, 서로 낯설기만 한 방랑자들이 떼지어 도시 빈민가를 떠돌게 만들었다느 ㄴ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p.55

"농부는 여러 가지 조건상 철저하게 절약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나 가릴 것 없이 낭비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70달러에 소 달구지를 사고 45달러에 손수레를 샀다면, 이 수레들을 타는 듯한 태양 아래나 비 속에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쓰지 않을 때는 창고에 잘 넣어 둬야 한다. 쟁기와 다른 도구들도 똑같은 방법으로 간수해야만 한다."

구어거스(J.M. Gourgas), <뉴잉글랜드 농부 The New England Farmer>


p.56

일터에서 삽이 돌아오면, 삽을 깨끗이 씻고 천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겨울에는 삽마다 기름칠을 했다. 삽들은 결코 녹슬지 않았으며, 따라서 진흙도 찰흙도 달라붙지 않아서 일하다 말고 삽을 탕탕 두드리거나 흙을 긁어 낼 필요가 없었다. 연장을 깨끗이 닦아 두는 것은 적은 힘을 들여 많은 일을 하는 것과 같다. 


p.59

"삶의 중요한 요소가 짜증스럽다면, 무슨 살 맛이 나겠는가? 특히 언제나 중요한 요소로 있어야 하는 것이 그렇다면.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 참된 경제 활동이란 당신이 날마다 하는 일 바로 그것에서 스스로 큰 즐거움을 어든ㄴ 것이다."

카펜터(Edward Carpenter), <정부 없는 사회 Non-Governmental Society>



p.63

"내가 행복의 보금자리를 지으려 할 때, 자연만이 그 건축가가 될 수 있다. 자연은 웅장한 집보다는 편리한 집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 자리로 시골을 고를 것이다."

호라티우스(Horatius), <첫 번째 책 First Book>, 기원전 20년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트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 우리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산다."

소로(Henry Thoreau), <월든 Walden>, 1854년


"살면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자기가 살 집을 짓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만 골몰하게 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방과 부엌을 어디에 꾸미는 게 가장 좋을지 몇십 번도 더 계획을 고쳐본다. 땅을 파기 시작하면 손수 삽을 들고 나선다. 그때 흙은 정말 달라 보인다. 다른 흙보다 더 가깝고 살갑게 느껴진다. 기초 벽을 세우고, 들보며 기둥으로 대강 일층의 틀을 잡은 다음에는, 깊은 생각에 잠겨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방을 들락날락한다. 또 달콤한 공상에 빠져서 들보 위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다."

버로스(John Burroughs), <계시와 계절 Signs and Seasons>, 1914년


"내 생각에, 자연은 사람이 삶을 이어 가도록 세 가지를 주었다. 먹을 거리를 기르는 땅, 세간살이를 만드는 나무, 집을 짓는 데 쓰는 돌."

피터스(Frazier Peters), <돌집 Houses of Stone>, 1933년


p.66

돌집은 관리하는 데 돈이 덜 들고, 페인트 칠을 안 해도 되며, 간수하는 데나 수리하는 데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돌집은 불에 타지도 않는다. 돌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라이트(Frank Lloyd Wright), <집 짓기 On Architecture>

딕(Stewart Dick). <잉글랜드의 시골집 The Cottage Homes of England>

본타(Edwin Bonta). <내 손으로 집 짓기 The Small House Primer>


p.73

집 안은 전기 난로나 중앙 난방 장치 없이 벽난로와 보통 난로로 따듯하게 덥힐 계획이었다. 

들통의 물로 씻어 내리는 변기와, 부엌 펌프를 설치하는 것으로 배관 공사는 끝을 내기로 했다. 이것은 우리 집에 겨울에 얼어 버릴 파이프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욕실은 힌두교와 핀란드식 욕조를 결합한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욕실의 한쪽 벽을 이루고 있는 너럭바위에 대리석 판을 대고 긴 의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 한가운데는 하수구를 만들었다. 바닥에 설치한 장작 난로는 그 작은 공간의 온도를 순식간에 섭씨 35도까지 끌어 올렸다. 우리는 양동이에 찬물과 더운 물을 받아 놓고 목욕이나 샤워를 했다. 이렇듯 집 안에 만든 '사우나'는 매우 효과가 좋고 재미있었다. 


p.77

플래그(Ernest Flagg), <작은 집 Small Houses>

첫째, 돌집은 낮게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높이가 1.5미터가 넘으면서부터는 그 위에 돌과 콘크리트를 쌓는 비용이 높이에 비례해 늘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2층을 짓고 싶다면 다락처럼 되도록 낮게 지어야 한다.

둘재, 지하실 공간은 할 수 있는 한 작게 하고, 모든 바닥은 되도록 콘크리트로 만들어야 한다. 만일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다른 것을 또 깔면 된다. 난방 파이프나 전선은 전선관이나 도관 안에 넣어서 설치한다.

셋째, 집은 탁 트인 하나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문틀과 창틀은 단단한 재료로 만든다. 돌과 콘크리트로 벽을 세우고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벽은 다시 쓸 수 있는 거푸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

다섯째, 지붕 선을 되도록 단순하게 만든다. 지붕창을 만들거나 본래의 지붕 말고 따로 모양을 내는 일이 되도록 없게 한다.

여섯째, 될 수 있는대로 모든 것을 표준형으로 하는 것이 좋다. 군더더기를 없애서 되도록이면 돈을 적게 들인다.

일곱째, 충분히 크게 만든다. 왜냐하면 돌벽을 한 번 세우면 건물을 넓히려고 벽을 부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p.78

플래그가 일으킨 가장 중요한 혁신은 네 번째 방법이다. 그것은 집을 지을 때 다시 쓸 수 있는 거푸집을 쓰는 일이다. 

거푸집을 만들려면 먼저 치수를 재서 목재르 잘라 뼈대를 세우고, 양쪽에 단단하게 합판을 댄다. 그리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힌 다음 거푸집은 떼어 내는 것이다. 거푸집을 이용한 건축은 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보통 거푸집에 들어가는 많은 목재들을 한 번만 쓰고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래그는 다시 쓸 수 있는 거푸집을 생각해 냈다. 

우리는 길이가 40센티미터에서 4미터에 이르는 거푸집을 서른 개쯤 갖고 13년 동안 숲 속 농장에서 열 채 가까이 돌집을 지었다. ......나아가 우리는 채소밭의 옹벽, 콘크리트 하수구, 수영장 같은 것을 만들 때도 똑같은 거푸집을 썼다. 작업을 끝낼 때마다 거푸집을 잘 닦고 나서, 망가진 것을 손보고, 엔진 오일을 발라 건조하고 평평한 곳에 보관했다.


p.79

모티머(J. Mortimer), <농사짓는 기술 The Whole Art of Husbandry>


키플링(Rudyard Kipling). <나에 관한 몇 가지 Something about Myself>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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