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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고 감사한데 조금 서울집에 가고 싶다. 이곳은 오래된 목조주택. 지금 내가 앉아있는 방은 14조 다다미. 이 방이 이 집에서 제일 크긴 하지만 암튼 이 방 외에도 1층에만 방이 두 개가 더 있고 2층에도 1층보다는 약간 작지만 제법 큰 방과 작은 방 두 개가 더 있다. 작긴 하지만 앞마당과 뒷마당이 둘 다 있고, 툇마루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필 수 있다는 점. 집이 오랜된 데에 비해 이상하게 혼자만 신식인 자동으로 온도와 수위를 맞춰 채워지는 깊은 욕조가 있다는 점. 이게 이 집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되고 반년 동안 아무도 없었던 만큼, 매일 같이 각종 벌레를 마주한다. 거미, 모기, 파리, 벌, 앞마당의 콩벌레와 나비는 다 괜찮은데 매미만큼 큰 바퀴벌레는 정말 자꾸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목욕을 신나게 하다가 처음 발견한 이래, 2-3일에 한두 마리씩은 꼭 나타나는데 주로 화장실 근처에서 나타나서 화장실 가는 것을 자꾸 미루게 된다. 그 어디에서 봤던 것보다 크다. 처음엔 장수풍데이인줄. 오래된 일본 목조가옥이라 바람이 불면 창이 흔들하는 소리가 난다. 밤에는 이 큰 집에서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팟캐스트를 엄청 작게 틀어놓고 잤다. 오늘은 아침에 자고 내려왔는데 대문을 열고 누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현관문이 반투명이라 하얀 옷과 하얀 모자를 쓴 사람의 실루엣을 분명히 봤는 걸, 대체 무엇일까. 내일은 서울집에서 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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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놀고 있는 공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작업공간 및 숙식공간으로 이 집을 내준 교수님이랑 이틀에 한 번 꼴로 각종 먹거리와 생활 필수품을 들고 찾아오는 파트너님, 일 끝나고 늦게 와서 놀아주고 쉬는 날엔 와서 같이 철물점에 가주는, 여기서 90키로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 내가 하는 일이 뭣이라고 이렇게. 늘 감사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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