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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부터 드륵드륵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점차 분명해지면서 그것이 내 몸보다 아래쪽에서 들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달음과 거의 동시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보드라운 천으로 감싸있는 솜뭉치 두 개의 감촉을 느끼게 된다. 약 삼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룸메이트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에 인형의 보드라움을 물리치고 이불을 걷어젖힌다. 조금 춥다. 어젯밤에는 분명히 내 발에 신겨있었던 수면 양말이 한짝만 없다. 왼발은 심지어 조금 시린 느낌이 든다. 서둘러 알람을 꺼야 한다는 생각에 철제 난간에 양손을 얹고, 미끄러지듯 사다리를 내려간다. 사다리는 이용할 때마다 나를 불안하게 한다. 너무 얇고 매끈하다. 언젠가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지르거나 할 것만 같다. 오늘도 무사히 세 번의 스텝만에 바닥에 착지한다. 바닥은 차갑다. 이층침대에 머리를 박지 않기 위해 몸을 구부리며 책상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해지한다. 밀어서 알람끄기. 그제야 한숨 돌리며 안경을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 안경을 끼고 아직 자고 있는 룸메이트를 힐긋 본다. 요즘 따라 기침 소리가 안 좋아졌다.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내가 뭔가 해줄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대로 무릎담요를 방석삼아 덮어둔 의자에 앉아 잠시 고민을 한다. 지금 당장 씻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잠을 확실히 깨려면 역시 더운 물로 씻는 것이 좋겠다. 침대 난간에 걸어둔 수건을 주섬주섬 챙긴다. 화장실이 깨끗한 것이 제법 마음에 든다. 물론 가끔은 부담이 되지만 룸메이트의 깔끔한 성격 덕분에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한다. 렌즈를 끼고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아 밖으로 나온다. 춥다. 난방이 언제부터 되는 건지 궁금하다. 그래도 더운 물만큼은 펑펑 나온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옷장을 열고 옷을 꺼내 입는다. 얼굴에도 로션과 선크림 등을 발라주고 가방을 챙긴다. 오늘 수업에 맞는 노트와 읽지는 않아도 늘 챙겨다니는 인문학 텍스트. 룸메이트는 그새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럴 때면 어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예상했던 시각보다 다소 일찍 방을 빠져나온다. 우리방문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쾅 닫히지 때문에 조심스럽게 문을 끝까지 잡고 있다가 살짝 놓는다. 방문을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복도가 움푹 파인 공간이 있다. 쓰레기통 두 개가 있는 공간이다. 쓰레기통 바로 옆으로 계단이 있다. 계단을 빙글빙글 걸어내려가면 1층 로비로 통하는 곳에는 유리문이 닫혀있다. exit이라고 쓰여진 동그랗고 하얀 버튼을 누르면 띡! 하고 잠금장치가 풀린다. 오른쪽으로 휴게실에 누가 있나 힐금 보고 우편함을 확인한다. 혹 누가 쪽지를 남겼을까봐 가까이 가서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본다. 오늘도 아무것도 없다. 왠지 뒷통수에 경비아저씨의 시선을 느끼며 '누르세요'라고 적힌 직사각형의 길쭉한 버튼을 누른다. 다시 띡! 하며 잠금장치가 풀리고 나는 팔뚝과 어깨로 문을 밀어 열고 나간다.
공기가 청명하지만 조금 차가운 느낌이다. 계단을 서너개 내려가 진짜 땅에 이른다. 진짜 땅이래봤자 아스팔트지만. 농구골대를 지나 차들이 다니는 내리막길로 걷기 시작한다. 이 길은 올라갈 때는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아침에 등교할 땐 곧잘 이용한다. 왠지 머리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윗공기를 맡을 수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상쾌하다. 벌써 낙엽이 많이 물들었다. 내리막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은 길에 낙엽이 제법 많다. 빨간 타원형 잎사귀를 주웠다. 척 보고 예뻐보이는 걸 세 개 주워 엄지와 검지로 줄기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걸었다. 아침에 이 길을 걸으면 태양이 거의 정면에 있는 느낌이다.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낮 동안 받을 수 없는 양기를 받는 시간이므로 기쁘게 눈을 감고 걷는다. 지금 담뿍 받아두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듯 햇볕을 고마워하며 걷는다. 아침에는 차량이 간혹 있다. 사람도 간혹 있다. 나와 마주보며 오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있음 나는 상대를 못 알아볼텐데 하고 가끔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침에 아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도로의 오른편으로 걸으면 의릉 나무를 볼 수도 있다. 아스팔트 표면이 거끌거끌하다. 가끔은 넘어질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정문을 지나기 30미터 전쯤에 태양이 제일 극렬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속으로 침투하는 것만 같다. 정문 가까이에 가면 그제야 나무그늘에 눈을 쉬게 해줄 수가 있다. 정문에는 경비아저씨들이 나와서 서계신다. 정문에서 근무하시는 분들께는 왠지 인사하는 버릇이 안들어 늘 어색한 기분으로 지난다. 아저씨들은 가끔 검은 차에 인사를 하는 것 같다. 정문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빛세상이다. 의릉입구에는 벌써부터 나와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이 있다. 대개 진분홍이나 분홍, 빨강 등 붉은 계통의 옷을 입으시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이른 아침부터 "학생 이것 좀 읽어봐요"하고 전도지를 주시는 분도 있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주시기에 열심히 받는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 전도지를 모으는 습관이 있다. 그 종교 특유의 감성이랄까 분위기가 재미있다. 복고스럽기도 하고 운명론적으로 과장되게, 다소 작위적으로 표현된 그림과 (사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문구가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의릉을 지나 미술원 방향으로 오른쪽턴을 할 때면 고개를 들오 볼록거울을 보는 편이다. 이따금 잊기도 하지만 혼자 걸을 땐 대개 올려다본다. 얼굴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인지 복장을 점검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씩 슥 보곤 한다. 미술원 정문을 향하는 길을 갈 땐 왠지 모르게 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그게 지름길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잔디를 가로지르는 길은 이용하지 않는다. 부러 차 틈을 지나 잔디길을 이용하는 게 번거롭다. 그렇게까지 빨리 가려는 의지가 없기도 하고. 미술원 정문을 지날 때에도 약간 어색한 기분이다. 사람이 있는데 없는듯 행동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지만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정문을 통과해서는 계속 도로로 걷는다. 노란 선을 따라 뚜벅뚜벅 걷는다. 삼층으로 곧장 이어지는 계단 말고 그 다음 계단을 이용해서 미술원에 들어간다. 첫번째 계단은 낮에도 왠지 으스스해서 무섭기 때문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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