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살고 싶은 삶이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동경하거나 열렬히 좋아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 경계하고 있지만 최근에 동경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아마도 그 두 사람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서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산이랑 물이랑 보고 흙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어디에 정착해서 살고 싶고, 내 힘으로 생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선생님 말대로 숫자 놀이에 불과한 은행계좌보다도 쓰나미가 와도 집을 고치고 땅을 일구는 능력이 있는 것이 더 중요한듯 하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갖추고 있어야 하는 능력이 하나도 없다. 그냥 사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데.
'주제없음 2013'에 해당되는 글 24건
- 2013.12.31 살고 싶은 삶
- 2013.12.29 괴산
- 2013.12.29 연말 사진
- 2013.12.09 12월 사진
- 2013.12.09 2013 올해의 뿅뿅
- 2013.12.09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2013.11.23 솦에게 가을의 끝을 알리는 포스팅
- 2013.11.23 나는여전히스물두살이라고햇었는데사실은아니었나보다
- 2013.11.18 겨울
- 2013.11.17 11월 사진
2013 올해의 뿅뿅
올해의 여행 : 교토
(다카도 매우매우 중요한 일이었지만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단연 교토. 숙원사업이었던 혼자 여행하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했고, 교토라는 도시가 주는 편안함이 인상 깊다. 사실 먹는 것, 보는 것이 다 좋았던 특이한 곳.)
올해의 영화 : 위대한 개츠비
(영화관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잤던 영화는 처음이었다. 야작하고 영화관 가지 않기. 좋았던 영화로 생각해보자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올해의 앨범 : 투도어시네마클럽 시드니 라이브 앨범
(8월 이후부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무한반복으로 이 앨범만 질리지도 않고 듣고 있다. 다프트펑크나 베이비쉠블스, 프란츠 등 쟁쟁한 앨범들 사이에서 홀연히 빛나는 음악. 사랑한다 2DCC)
올해의 전시 : 에르메스 미술상
(이게 조금 웃긴 게, 이건 정말 별로여서 올해의 전시다. 나에게 제일 큰 멘붕을 안겨주었다. 미술을 왜 하는지,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만큼 진부하고 구린 전시였다.)
올해의 책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매우 오랜만에 구입한 시집. 그리고 매우 오랜만에 '읽을 수' 있었던 책. 차분한 마음으로 글자들이 겅중겅중하지 않은 채 읽을 수 있었다.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올해의 작가 : 오인환
(어렵다. 후보로는 양혜규 오로즈코 이미혜 재닌안토니 등이 있었지만.)
올해의 안주 : 코코넛
(다카대 정원에서 주워온 코코넛을 인도산 칼로 슥슥 잘라서 먹었다.
마치 고등학생 때처럼 스릴이 넘치던 술자리!)
올해의 짝사랑 : 뀨
(혼자 불타올랐다가 혼자 시들시들 흥미를 잃어 죄송요. 그치만 즐거웠다..!)
올해의 음식 : 사바즈시
(먹고 싶다 사바즈시 엉엉. 네기우동도 세가지팥떡도. 먹으러만 가고 싶다 교토.)
올해의 카페 : 디엔에이
(아메리카노, 모카, 아이스카푸치노. 그외엔 사실 안 먹어봄.)
올해의 음료 : 카모마일
(원래 카모마일 싫어한다. 근데 가을에 언니가 스위스에서 사다준 카모마일을 감기 때문에 먹다가 제법 즐겨먹게 됐다.)
올해의 공연 : 슈퍼소닉 투도어시네마클럽
(프란츠도 좋았지만은 난 2DCC)
올해의 동네 : 석관동
(엉엉)
올해의 드라마 : 없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 미래의 선택도 열심히 봤다. 다운튼애비도 괜찮았다. 근데 딱히 상줄만한 건 없다. 그나저나 어제 솦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걸로 내가 왜 힐난 받아야 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올해의 웹툰 : 수업시간 그녀
(실은 이것밖에 본 게 없다)
올해의 발견 : 내가 김치를 좋아한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먹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올해엔 책을 많이 샀다. 읽지는 않았다.
올해는 좀 팍팍하다. 다양했던 카테고리에 채울 말이 없다.
그래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한동안 뜸했던 사람들과 자주 보게 된다거나 다시 연락이 닿는다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 흥미로웠던 한해. 그리고 물론 입학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무진장 많이 만났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뭐 그런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하는 믿음을 재확인하는 해였다.
겨울 석모도
봄 안동포항
여름 교토 다카 싱가폴
과외도 많이 했네 진짜 채ㅇ, 주ㅎ, 예ㄹ, 기ㅍ
몸무게 4-(심할 땐)6키로 증량!!!!! 미쳤다엉엉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와 성격이 어떠한 면에서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발견하면 내심 반갑다. 하지만 딱 그만큼 더 조심스러워진다. 겁이 많고 소심해서 천천히 느릿느릿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생각에 나는 좀 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가리는 것도 있고 쓸데없이 고심하거나 망설이는 부분도 많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근래에 나랑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을 두 명이나 발견했다. 궁금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역시나 어렵다. 덕분에 나는 나의 가장 큰 방어이자 핑계인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사실은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여서 조금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걱정하고 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서. 상대는 알아차려주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자기랑 비슷하다는 걸, 또는 내가 다 알아차리고 있다는 걸. 그래 나는 늘 상대방을 이런 식으로 무시한다.
언제 어디서나 수수께끼를 내고 있다. 습관적으로, 암호처럼 흩뿌린다. 나를 알아차려 주세요. 내가 다 말해주고 나서 알아주는 것은 '진짜' 알아주는 것이 아닌 것만 같다고 말했었다. 진짜 알고 진짜 이해받기를 엄청 바라고 있는데 그런 일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나타나질 않는다. 그것보다도 나에게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는 일이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사실은 없던 일로 하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겁이 나는데, 어쨌든 힘을 내어 용기를 내어 씩씩하게 약속한 시간에 서 있어야지. 지난 금요일에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잖아. 그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이번에도 잘 될 거야 라는 인과관계 하나 없는 믿음으로.
목요일 오후 세시. 힘내자.
나는여전히스물두살이라고햇었는데사실은아니었나보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평소 내가 소박하게 좋아하던 동기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소박하게 좋아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블로그 왼편에 최근 포스팅들 중에 '보통의 존재'가 눈에 띈다. 솔직히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왜들 그렇게 열광하는지, 많이 팔리는지, 공감하는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뭐 다르냐는 반박을 받기 십상이겠지만은, 김신의 옹고집으로 꿋꿋하게 말한다. (나는 김신이 좋다. 이동건은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마르고 길쭉한 것에 페티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페티시 하니까 하는 말인데 요즘들어 점점 더 하는 생각 중 하나는, 내가 다리를 좋아하는 것이다. 역시 마르고 길쭉한 다리. 김신은 일단 길다. 몸이 아름답다. 그런데 얼굴도 아름답다. 요즘 연예인들 중에 누가 안 그렇겠냐만은, 어쨌든 눈썹이 특히 곧고 진하다. 예쁘다. 코도 오똑오똑하고 눈망울은 아무리 못된 얼굴을 해도 기본적으로는 선하다. 그게 마음에 든다. 그리고 길고 예쁜 몸의 미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차림새를 하고 나타난다. 잘 빠진 수트, 캐주얼을 입더라도 똑 떨어지게 입지. 이제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간다...) 그 노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본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자기 자신도 특별하고 자신의 취향도 특별하고 노란 책에 공감할 수 있는 자신도 특별하고 그런 걸 자기 취향이라고 말하는데에 대한 자부심 따위도 곧잘 느껴진다. 조금, 솔직히, 지루하다. 이십대초반의 thing인가 싶기도 하고. 취향으로 에고트립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아련아련하다. 머리색으로, 특이한 패션으로, 마이너(하다고 믿는 대중들이 좋아하는)한 취향으로, 괴팍한 성격으로, 나도 다 해보았다. 이제 그런 것으로 조급해하거나 안달하지는 않는다. 그런 걸 보면 크긴 컸나 보다.
+
얼마전 아마도 수요일과 목요일에 매우 고무적인 일: 시집을 하나 샀다. 최근 몇 년 간은 글을 읽지 못했다. 여기에도 몇 번 썼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급해져서 글자를 읽어내지 못했다. 눈알이 글자 위를 겅중겅중. 마음을 붙들어 둘 수 없었다. 머무를 수가 없었다. 헌데 오랜만에 예전처럼 글을 읽는 순간을 만났다. 박준의 시집.
그리고 목요일 오후에는 최근 한두 달 동안 귀에 전연 들어오지를 않았었던 프란츠퍼디난드의 신보가 갑자기 귀에 들어왔다. 들린다. sweet sweet love celebration sweet love illumination. 이제, 들린다. 기쁘다. 감격스러운 느낌. 막으로 가려져 있는 것처럼 좀처럼 닿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생생하게 와서 닿는 것들. 만나는 것들. 다가오는 것들.
어딘가 멀리멀리 가서 짱 박혀 있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은 첫눈이 왔다. 수업중에 창밖을 봤는데 하얀뭉치가 펑펑 내려왔다. 여느때와 같이 교수님과 함께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둘러 앉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턱을 떨구고 '아!'하고 소리를 내었다. 갑자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눈눈' '눈와요' '눈와' '눈' 따위의 문자를 마구 보냈다. 쉬는 시간 주세요 쉬는 시간. 눈이 쌓이면 안되는데 하고 걱정부터 하시던 소녀같은 교수님이 쉬는 시간을 주자마자 구름다리로 우르르 폴짝 달려나갔다. 눈으로 뛰어들어 사진을 스무장쯤 찍고는 매점에 가서 꼬꼬면을 사먹었다. 눈 오는 날엔 꼬꼬면이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