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 // 자유의 언덕, 홍상수
지난주에 <자유의 언덕>을 보고 오늘 <다른 나라에서>를 보았다. 작업에 대해서 생각하기 싫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영화를 본다. 미술이 아닌 다른 것이 내 뇌를 말랑말랑하게 해줄거야, 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위안삼아. 어쨌든 홍상수 영화는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근작은 하나도 안 봤었더랬다. 이제는 외국배우가 나와서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을 보게 되는 건가.
홍상수 영화는 되게 재미없는데 재밌다. 대단한 능력이다. 민망한 감정이 왜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민망할 정도로 '진짜'인 걸 보여준다. 펜션에 있는 이불이 그랬다. 이불의 색깔이랑 질감이랑 무늬 같은 것. 왠지 손목이 간질거릴 정도로 민망하다. 얼마 전에 집을 청소+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딜 배경으로 찍어도 예쁜(/부끄럽지 않은) 집을 만들고 싶다"고. 근데 홍상수의 영화 배경이란 저런 마음과 얼마나 다른가. 내가 사는 집이 내가 사는 집이다.
오히려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거든. 홍상수 영화에서의 '일상적인 대화'가 일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감독이 취하는 전략?은 뭘까. 그래도 이 사람의 '영화'가 미술에서의 영상 작업이 아닌, '영화'가 되는 요소가 있을 터인데 그게 뭘까. 영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뭔지. 그렇다면 누군가의 일상이 '미술'이란 형식 속에 들어갈 수 있나, 그런 형식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는 하나. 이게 과연 존 케이지의 4분33초와 비교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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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에 분장과 헤어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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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는 것. 조명하는 것. 공공의 순간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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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은커녕 또 작업의 공식 같은 거나 생각하고 앉아있다. 이마트 가서 맥주나 사와야겠다. 사재기를 하고 집에 쌓아두고 마시고 싶은데, 많이 사오면 많이 사오는대로 다 마셔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뱃살아 허벅지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