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얄팍한 취향/노트 / 2009. 7. 16. 16:43
나는 다만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ㅡ실제적으로ㅡ정리하고 검증하는 데 반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자폐적이 되거나, 외부 세계를 완강하게 거부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오로지 시간적인 문제였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제대로 회복하고, 재정비하기 위한 순수한 물리적인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개미집 흙가루로 쌓은 둑같이 연약하면서도 거대한(혹은 이 거대한 모래성 같은) 개미무덤 같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찾는 것은 그다지 곤란한 직업이 아니다. 물론 그 일의 종류며 내용에 대해서 군소리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일감의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았고, 들어오는 일감은 닥치는 대로 떠맡았다. 마감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글씨도 깨끗했다. 일솜씨도 꼼꼼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적당하게 할 일도 성실하게 했고, 대가가 낮아도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
이발소를 나서서,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와 자,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했다. 겨우 사십오 분이 소비되었을 뿐이었다.
느낀 일은 굉장히 구체적인데도, 막상 그것을 말로 하려면 그런 구체성 같은 것이 자꾸자꾸 엷어져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하루에 열다섯 곳이나 레스토랑이며 요리집을 돌고, 내놓는 요리를 한 입씩 먹어보고, 나머지는 전부 남겨놓는 일. 그런 것이 어딘가 결정적으로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결국 그는 나에게(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미 지나쳐 버린 영역'에 속해 있었다. 내가 그를 거기에 밀어넣은 건 아니다. 그가 스스로 거기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고, 그 두 갈래 길은 여간해선 교차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이었다.
그가 제법 우아한 손놀림으로 가스버너에 불을 켜면, 다들 올림픽 개회식이라도 보는 눈매로 그를 보곤 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건 누구 한 사람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자네의 세계야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버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는 중에 돌연 잠이 찾아왔다. 무대의 암전 같은 일순의 급격한 잠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다. 타인에게 좋은 얼굴을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그는 잘 생기고 인상이 좋을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학생 운동에 관련되어 어쩌고저쩌고 라든지, 애인을 임신시킨 채 버리고 어쩌고저쩌고 라는 퍽도 진부한 상처였는데 그런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회상이 원숭이가 점토를 벽에 던지는 것처럼 엉성하게 삽입되곤 했다.
그 아이는 가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혼자 씹고 있었다. 나에겐 단 한 개도 권하지 않았다. 나는 별로 껌 따위는 씹고 싶지 않았지만, 의례적으로 한 번쯤은 권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분은 들었다.
정말 좋은 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렇겠지
모두들 그것을 도피라고 불러. 하지만 뭐 그건 그걸로 상관없어.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네 인생은 네 것이야. 무엇을 구하느냐만 명백하다면, 너는 너 좋을 대로 살면 되는 거야. 남이 뭐라고 하건 알 게 뭐야. 그런 녀석들은 왕악어에게 먹혀 죽으라지. 나는 예전에, 너만한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었어.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건 어쩌면 내가 인간적으로 성장해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내가 영원히 옳은 것인지도 몰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거든.
하지만 어째서 일부러 그런 일을 해야 하지? 다들 제멋대로 저 좋은 걸 먹고 살면 되지 않아. 안 그래? 어째서 타인에게 음식점 지시까지 일일이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째서 메뉴의 선택법까지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한 후에도 아무 말도 없었다. 극히 상징적으로밖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상징적인 어투로만 이야기했다.
완고하지는 않아요. 내게는 내 나름의 생각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뿐이에요.
유키는 자기 한 사람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자신 주변 사람들의 감정까지 일일이 살펴가며 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만큼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그럼으로써 타인을 통해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 진행을 차례로 더듬어보고, 그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 할지라도, 나는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이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두려워지는 때가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이에요.
이 사람과 결합하면 나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리라, 하지만 결합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리라고 말이에요.
암시적인 침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암시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암시의 암시성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암시성이 현실의 형태를 띠기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잠시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양키즈와 오리온즈의 시합이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시합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텔레비전을 켜두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 현실적인 것과 이어져 있다는 표시로.
"다행이군요"라고 나는 말했다. 내가 '다행이군요'라는 대사를 사용하는 것은, 그밖에는 무엇 하나 긍정적인 언어 표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고, 또 침묵이 부적당하다는 위기적 상황일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혼자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유키와 함께 있는 게 싫었던 건 아니어씾만, 그와는 상관없이, 혼자 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실패해도 누구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우스운 일이 있으면 혼자 농담을 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으면 되었다. 아무도 '그런 농담은 시시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루하면 재떨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다. 내가 가만히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도 '왜 재떨이 따위를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취향을 따지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어. 거기서는 '취향이 좋은 사람'이란 '성격이 비뚤어진 가난뱅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야. 동정받을 뿐이지.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
어쨌든 유미요시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지금이라도 곧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껴안고, 데이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녀가 나의 질투를 간파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평범함이란 흰옷에 묻은 숙명적인 얼룩과 같은 것이다. 한 번 묻은 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일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거야. 입 밖에 내면 그건 거기서 끝나버려. 다시 몸에 깃들지 않아. 너는 딕 노스에게 한 일을 후회해. 그리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정말로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 내가 딕 노스였다면 나는 네가 그처럼 간단히 후회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입 밖에 내서 '몹쓸 짓을 했다'고 타인에게 말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건 예의의 문제고, 절도의 문제야. 너는 그걸 배워야 해.
그리고 나는 그처럼 입바른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상대가 몇 살이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은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상상력이 없는 자들일수록 자기 합리화가 재빠르거든.
그 존재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완벽한 귀였어.
영화는 너무 뻔하다 싶을 만큼 진부한 줄거리로 평범하게 진행되어갔다. 대사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음악도 평범했다. 타임캡슐에 넣어서 '평범'이라는 딱지를 부텨 땅에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영화였다.
몸의 기능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들어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상실돼 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계속 상실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나의 세계 인식 자체가 뒤흔들려 버린다.
나 자신과, 내가 연출하고 있는 나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이상 벌어지면 그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구. 나는 그 격차를 이 눈으로 실제로 볼 수 있었어. 마치 지진이 일어나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진 것처럼, 그게 딱 벌어져 있는 거야. 깊고 어두운 구멍이야. 현기증이 날 만큼 깊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파괴해 버리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면 무엇인가를 부수고 있어.
개미집 흙가루로 쌓은 둑같이 연약하면서도 거대한(혹은 이 거대한 모래성 같은) 개미무덤 같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찾는 것은 그다지 곤란한 직업이 아니다. 물론 그 일의 종류며 내용에 대해서 군소리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일감의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았고, 들어오는 일감은 닥치는 대로 떠맡았다. 마감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글씨도 깨끗했다. 일솜씨도 꼼꼼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적당하게 할 일도 성실하게 했고, 대가가 낮아도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
이발소를 나서서,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와 자,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했다. 겨우 사십오 분이 소비되었을 뿐이었다.
느낀 일은 굉장히 구체적인데도, 막상 그것을 말로 하려면 그런 구체성 같은 것이 자꾸자꾸 엷어져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하루에 열다섯 곳이나 레스토랑이며 요리집을 돌고, 내놓는 요리를 한 입씩 먹어보고, 나머지는 전부 남겨놓는 일. 그런 것이 어딘가 결정적으로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결국 그는 나에게(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미 지나쳐 버린 영역'에 속해 있었다. 내가 그를 거기에 밀어넣은 건 아니다. 그가 스스로 거기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고, 그 두 갈래 길은 여간해선 교차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이었다.
그가 제법 우아한 손놀림으로 가스버너에 불을 켜면, 다들 올림픽 개회식이라도 보는 눈매로 그를 보곤 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건 누구 한 사람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자네의 세계야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버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는 중에 돌연 잠이 찾아왔다. 무대의 암전 같은 일순의 급격한 잠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다. 타인에게 좋은 얼굴을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그는 잘 생기고 인상이 좋을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학생 운동에 관련되어 어쩌고저쩌고 라든지, 애인을 임신시킨 채 버리고 어쩌고저쩌고 라는 퍽도 진부한 상처였는데 그런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회상이 원숭이가 점토를 벽에 던지는 것처럼 엉성하게 삽입되곤 했다.
그 아이는 가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혼자 씹고 있었다. 나에겐 단 한 개도 권하지 않았다. 나는 별로 껌 따위는 씹고 싶지 않았지만, 의례적으로 한 번쯤은 권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분은 들었다.
정말 좋은 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렇겠지
모두들 그것을 도피라고 불러. 하지만 뭐 그건 그걸로 상관없어.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네 인생은 네 것이야. 무엇을 구하느냐만 명백하다면, 너는 너 좋을 대로 살면 되는 거야. 남이 뭐라고 하건 알 게 뭐야. 그런 녀석들은 왕악어에게 먹혀 죽으라지. 나는 예전에, 너만한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었어.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건 어쩌면 내가 인간적으로 성장해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내가 영원히 옳은 것인지도 몰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거든.
하지만 어째서 일부러 그런 일을 해야 하지? 다들 제멋대로 저 좋은 걸 먹고 살면 되지 않아. 안 그래? 어째서 타인에게 음식점 지시까지 일일이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째서 메뉴의 선택법까지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한 후에도 아무 말도 없었다. 극히 상징적으로밖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상징적인 어투로만 이야기했다.
완고하지는 않아요. 내게는 내 나름의 생각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뿐이에요.
유키는 자기 한 사람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자신 주변 사람들의 감정까지 일일이 살펴가며 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만큼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그럼으로써 타인을 통해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 진행을 차례로 더듬어보고, 그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 할지라도, 나는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이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두려워지는 때가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이에요.
이 사람과 결합하면 나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리라, 하지만 결합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리라고 말이에요.
암시적인 침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암시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암시의 암시성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암시성이 현실의 형태를 띠기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잠시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양키즈와 오리온즈의 시합이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시합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텔레비전을 켜두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 현실적인 것과 이어져 있다는 표시로.
"다행이군요"라고 나는 말했다. 내가 '다행이군요'라는 대사를 사용하는 것은, 그밖에는 무엇 하나 긍정적인 언어 표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고, 또 침묵이 부적당하다는 위기적 상황일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혼자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유키와 함께 있는 게 싫었던 건 아니어씾만, 그와는 상관없이, 혼자 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실패해도 누구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우스운 일이 있으면 혼자 농담을 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으면 되었다. 아무도 '그런 농담은 시시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루하면 재떨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다. 내가 가만히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도 '왜 재떨이 따위를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취향을 따지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어. 거기서는 '취향이 좋은 사람'이란 '성격이 비뚤어진 가난뱅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야. 동정받을 뿐이지.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
어쨌든 유미요시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지금이라도 곧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껴안고, 데이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녀가 나의 질투를 간파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평범함이란 흰옷에 묻은 숙명적인 얼룩과 같은 것이다. 한 번 묻은 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일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거야. 입 밖에 내면 그건 거기서 끝나버려. 다시 몸에 깃들지 않아. 너는 딕 노스에게 한 일을 후회해. 그리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정말로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 내가 딕 노스였다면 나는 네가 그처럼 간단히 후회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입 밖에 내서 '몹쓸 짓을 했다'고 타인에게 말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건 예의의 문제고, 절도의 문제야. 너는 그걸 배워야 해.
그리고 나는 그처럼 입바른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상대가 몇 살이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은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상상력이 없는 자들일수록 자기 합리화가 재빠르거든.
그 존재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완벽한 귀였어.
영화는 너무 뻔하다 싶을 만큼 진부한 줄거리로 평범하게 진행되어갔다. 대사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음악도 평범했다. 타임캡슐에 넣어서 '평범'이라는 딱지를 부텨 땅에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영화였다.
몸의 기능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들어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상실돼 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계속 상실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나의 세계 인식 자체가 뒤흔들려 버린다.
나 자신과, 내가 연출하고 있는 나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이상 벌어지면 그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구. 나는 그 격차를 이 눈으로 실제로 볼 수 있었어. 마치 지진이 일어나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진 것처럼, 그게 딱 벌어져 있는 거야. 깊고 어두운 구멍이야. 현기증이 날 만큼 깊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파괴해 버리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면 무엇인가를 부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