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님 노래,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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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의 글
p.38
내 친구인 여성은 인도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타누(Tanu)였다. 하지만 이 순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 친구가 아프가니탄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타누를 이미지로 의식하게 되었다.
p.38
이러한 순간에 감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그건 내 의도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 내가 그걸 의도해야 했었나?"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수용자 측이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럴 때 타누의 실제 정체성은 보는 이가 수용하는 그녀의 정체성과는 무관하다. 어떻든 이미지는 늘 타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향은 보는 이의 분별(differentitation)을 요구한 것이고, 두 번째 방향은 보는 이한테 수용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맞아. 의도한 거야. 전에 그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그걸 의도하게 되었을 테니까."
p.43
요약은 보통 읽기도 빠르고 쓰기도 빠르다. 시간의 틀은 요약을 필요로 하는 문화와 관계가 깊다.
벨러 타르(Bela Tarr)의 결정.
p.47
롤랑바르트는 글이 오랫동안 안 써질 때 이용하던 다양한 기술 중 하나로 출판하지 않을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p.49
<템퍼 클레이>는 제작 과정에서나 작곡에서나 저항과 변명 사이의 경계선의 발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마침 시와 음악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장치들을 이용했다. 압운(rhyme), 제창(unison), 빠르기(speed), 성조(voice), 반음계적 화성 변화(chromatic harmonic shift)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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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그린블라트의 글
p.66
"하지만 네 마음도 그러하냐?" 그는 적어도 코델리아로부터 공식적인 복종 이상의 무엇을, 권위에 대한 복종과 함께 웨일랜드의 설명 끝에 묘사된 거의 성애 같은 갈망이 묘하게 뒤섞인 무엇을 원한다.
_최빛나의 글
p.107
김성환의 작품은 위와 같은 재앙적 사건들을 기록하지도, 그것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르포르타주 형식과는 거리가 먼 그의 작업은 심지어 비평의 한 형식으로조차 기능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김성환이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일련의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현실이란 소통의 형태가 변칙적이며 이야기의 파편들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곳이다. 누가,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에 대한 서술이 없는 이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은 감상자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p.115
이 같은 상황에서 퍼포먼스 작업 등 살아있는 노동력을 그 재료로 삼는 모든 작품이야말로 가장 모호한 대접을 받게 된다.
p.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 이후의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거대하고도 만질 수 없으며 다루기 까다로운) 자본주의의 망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억압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곳에서마다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조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유월>
p.117
김성환은 <유월>을 제안하면서 "공적 리듬을 배반"하는 것이 <유월> 활동의 핵심 주제라고 내게 말했다.
p.120
내가 이 순간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 공유하고 싶은지, 그러고는 내 생각을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구들끼리의 비공개 모임 안에서일지언정 퍼포먼스와 강연이 반복되는 이 훈련은 꽤나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다. 진행 과정은 이랬다. 우선,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주 그저 반응(reaction)-응답(response)과는 별개의 의미에서의 반응-으로 말을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둘째, 제한된 시간 틀 안에서 주어진 수단을 가지고 (이왕이면 말과 입만을 사용하진 말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구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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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스미스의 글
p.151
그러나 미디어의 힘이 점점 확산됨에 따라,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인' 문화와 관계를 맺는 것과 우리가 사는 지역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지는 듯하다.
p.153
이 사례는 우리의 지역 환경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얻은 의미와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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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과 dogr의 대화
p.174
김 "한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대륙의 시간적 흐름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시간 흐름대로 상대를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본인의 무지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둥을 노래하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듯이."
김 "1:1 비율이라는 발언은 생산이란 것에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ready-made) 생산물이 쓰인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