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여름 캠프가 끝났을 때 다섯 명은 제각기 '나는 지금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친구를 만났다.'라고 느꼈다. 자신이 다른 네 명을 필요로 하고 다른 네 명 또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조화로운 어울림의 감각이었다.
쓰쿠루는 자신에게 어쩌면 알지 못할 비정상적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
눈에 띄는 개성이나 특징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그리고 늘 중용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데도 주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뭔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있는 것 같다.) 모순을 포함한 그러한 자기 인식은 소년 시절부터 서른여섯 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인생의 이런저런 부분에서 그에게 당혹감과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때는 미묘하게 어떤 때는 나름대로 깊고 강하게.
쓰쿠루는 가끔 자신이 왜 이 친구들 그룹에 속하게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진정 내가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오히려 내가 없으면 나머지 네 친구는 더 자유롭고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다들 아직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뿐이 아닐까? 그걸 깨닫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생각할수록 쓰쿠루는 혼란스러웠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란 마치 단위가 없는 물질을 계량하는 것과 같았다. 저울의 바늘이 지잉 소리를 내며 딱 한 군데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언젠가 그 친밀한 공동체에서 탈락하거나 방출되어 혼자 덩그러니 남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늘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있으면 어둡고 불길한 암초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런 불안이 자주 고개를 쳐들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 같은 걸 유지하려 했던 거야."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을지도 몰라."
"그렇게 존재하고 존속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아마도."
사라는 눈에 힘을 주어 가늘게 뜨고 말했다. "우주처럼."
"우주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그게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소중히 지켜 가는 것. 바람 속에서 성냥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처럼."
"케미스트리?"
"거기 우연히 생겨난 장의 힘. 다시는 재현되지 않는 것."
"그런 식으로 단호하게 거부당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게다가 상대는 누구보다 신뢰하고 내 몸의 일부처럼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이었어. 원인을 파헤친다든지 오해를 수정하기 이전에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고 말았던 거야. 여간해선 일어서기도 힘들 만큼. 내 속에서 뭔가가 잘려 나가 버린 것 같았어."
"원인을 따지고 들면 거기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였겠지. 진상이야 어떤 것이든 그게 나를 구해주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신 비슷한 것이 있었어."
"당신은 사소한 인간도 아니고 보잘것없는 인간도 아니야."
"고마워." 쓰쿠루는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만히 눌렀다. "하지만 그건 내 머릿속의 문제야."
그럴 때, 그는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었다. 다자키 쓰쿠루이면서 다자키 쓰쿠루가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끼면 그는 자신의 몸을 떠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무통의 장소에서 아픔을 견디는 다자키 쓰쿠루의 모습을 관찰했다. 의식을 강하게 집중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감각은 지금까지도 언뜻언뜻 그의 내면에서 되살아났다. 자신을 떠나는 것. 자신의 아픔을 타인의 것처럼 바라보는 것.
습관이 그의 생활을 앞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완벽한 공동체를 믿지 않고 케미스트리의 온기를 몸으로 느끼지도 않았다.
"성찰을 낳는 것은 아픔입니다. 나이도 아니고, 하물며 수염은 더더욱 아니죠."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귀향했을 때 혹시 소식을 듣고 네 친구가 조문을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하면 될까? 그러나 결국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쓰쿠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쓸쓸했다. 그것이 이제는 정말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프란츠 리스트, Le Mal du Pays
라자르 베르만 Lazar Berman
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그렇다고 해도 그 연하의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대체로 네 명의 일은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는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자신이 네 친구에게서 노골적으로 거부당한 아픔은 그의 마음속에 늘 변함없이 존재했다. 다만 그 무렵에 와서는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어느 순간 발바닥까지 밀려오고, 어느 순간에는 멀리 가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대체 하이다가 자신의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또는 어떤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두 사람은 많은 것을 놓고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따금씩 쓰쿠루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 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 장애물이 네 친구에게 거부당해서 생긴 것인지, 또는 그 일과는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던 구조적인 것인지, 쓰쿠루는 가려낼 수 없었다.
"애당초 경험하지 않은 것이 좋았을지도 몰라."하고 쓰쿠루는 말했다.
"결국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분은 잘 알겠어."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아픈 상처를 입고 많이 낙담하고 말았다 해도 그 사람들을 만난 게 당신한테는 역시 좋은 일이었다는 느낌이 들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그런 식으로 빈틈없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니,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그 결합이 다섯 명 모두에게 이루어졌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여기서부터가 정말 말하기 힘든 부분이야. 표현하기가 힘들어. 일단 말로 해 버리면 너무 단순화되거든. 그렇지만 줄기를 세워 논리적으로 해설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감각적인 거니까."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 상대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혼자 덩그러니 남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몰라."
아무튼 하이다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자 그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였는지, 하루하루의 생활에 얼마나 풍성한 색채감을 주었는지 쓰쿠루는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는 이윽고 사라진다.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또는 실망하고 화가 나서) 떠나 버리는 것 같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설명도 없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따스한 피가 흐르고 아직도 조용히 맥박 치는 인연의 끈을 날카롭고 소리없는 손도끼로 싹둑 잘라 버리는 것처럼.
분명 자기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낙담케 하는 뭔가가 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고립의 이중 부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방인인 그가 여기서 고립된다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일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기, 쓰쿠루, 우리가 우리였다는 거,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었던 거야. 우리가 하나의 그룹으로 일체감을 가졌다는 것 말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것이 몇 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사람한테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사라는 낙담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난 두려워.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또는 무슨 잘못된 말을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냥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그렇지만 참 이상해." 에리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아름다운 문양의 도자기, 작은 새들의 지저귐,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알프레트 브렌델이 단정하게 연주하는 <순례의 해>>. 그의 몸에 살며시 닿은 에리의 풍만한 가슴이 전한 감촉. 따스한 입김과 눈물에 젖은 볼. 잃어버린 몇 가지 가능성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가족들은 쓰쿠루가 벌써 폐기 처분해 버린 옛날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으려 했다. 그것을 재현하여 보여 주기 위해 그는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했다. 나고야의 거리도 묘하게 서먹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었다. 이미 거기에는 쓰쿠루가 갈구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잇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무얼 기대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야기가 끝나서 조금 당황했고 약간 실망했다. 이렇다 할 모험도 판타지도 없었다. 핀란드로 간 쓰쿠루를 보면서 자꾸만 노르웨이를 생각했다. 어쨌든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는 끝났고, 그는 사라와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