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온지 - 그러니까 며칠이나 지났더라. 오늘이 6일째다. 들어오자마자 배낭을 멘 채 이태원으로 가서 친구들의 전시를 보았다. 그날이 전시 마지막날이었다. 그 전시에 함께 할 수도 있었던, 그래서 두 달 내내 왠지 모르게 내가 괜히 미안했던 동행인과 나는 쟈니덤플링에서 1번과 2번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칭따오 두 병을 시원하게 마셨다. 국물요리가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헌데 어릴 적 나는 내가 김치를 자발적으로 먹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었고, 쇠고기고추장을 보물처럼 여기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상상으로조차 해보지 않았었다. 어쨌든 한숟갈 떠마실 때마다 아저씨처럼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정리정리정리의 나날들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엔 학교 작업실 이사를 했다. 그리고 본가로 가서 또 정리를 했다. 버리고 또 버리고 버릴 것을 추려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다음날에는 두 달 사이 엄청 커버린 조카를 보러 갔다. 조카는 나를 오래도록 관찰했다. 절대 내게 오거나 나에게 미소를 보여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두 눈은 나에게 시선고정이었다. 베이비시터 선생님에게 조카를 맡기고 언니와 둘이서 밥을 먹고 다시 들어가자 조카는 나를 조금 덜 낯설어하는 듯했다. 런던에서 "노팅힐"을 미국식 발음으로 "너딩힐"로 말해서 영국인이 못알아들었다는 5년 전 조카의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해주자 조카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집중했고, 그때 그애의 마음을 다시 얻었다. 쉐이크를 마시면서 인간 믹서가 되어 알갱이들을 보여줬다가 사라지게 하고, 똥이 왜 똥이라 불리는지 거짓부렁이를 막 늘어놓으며 조카의 환심을 샀다. 내가 말할 때마다 까르르 웃는 조카를 보자 자신감이 생겼달까. 저녁엔 침낭과 가방을 빌려준 친구네 집에서 오랜만에 긴긴 대화를 나누며 먹고 마셨다. 그리고는 또 본가에 가서 정리정리정리 그리고 지금은 학교앞 자취방에 와서 또 가구를 옮기고 정리를 하고 있다. 아마 내일은 학교작업실을 다시 정리해야 할듯한데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물건을 소유하는 일은 정말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