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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없음 2018 / 2018. 3. 3. 16:00

* 3월2일이 되어서야 '주제없음 2018' 카테고리를 생성하다니. 사라지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는 이 자리를 지키려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2008년부터 십년을 지내온 것이 제법 뿌듯하다.


섬에 내려와있다. 제주처럼 큰 섬은 아니지만 굴업도처럼 작은 섬에 잠시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무릎 상태 때문에 걸어서 섬을 도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있는 남쪽 항구에서 북쪽 항구까지 섬을 가로질러 5킬로미터 정도, 동쪽 항구로는 6킬로미터 정도. 읍내에는 편의점이 두 개나 있고 횟집을 비롯한 가게들이 아주 많다. 가요방이 꽤나 많은 것이 인상적. 노래방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의 간판이다. 


작년 이맘때 일본에서 있었던 레지던시와 유사한 점이 조금 있다. 삼시세끼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과 날씨에 아주 큰 영향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것. 처음 내려온 날과 그 다음날은 날씨가 매우 따뜻하고 화창했다. 그런 날들이 당연스럽게 이어질 줄만 알았는데 그 다음날엔 하루종일 비가 왔고, 파고가 높아 배가 뜨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낮은 기온과 구름에 가려진 음산한 하늘 때문에 산책을 길게 하지 못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날이 개어 제법 오래 밖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작은 배들이 정박해있는 곳에서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통통 거리는 소리를 내는 배들에 한참 귀를 기울였다. 큰 다리 근처 부둣가에 앉아서 빛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마을 정자에 앉아 햇볕이 발가락을 따뜻하게 뎁혀주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좋아서 그냥 앉아있을 수 있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으면 결코 하지 못할 일이다. 오늘은 다시 하늘이 어둡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그날그날의 파도 높이 살핀다. 배를 타고 나갈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는 건 내가 너무나도 도시인이기 때문이겠지. 


같이 내려왔던 친구는 어제 잠시 서울에 올라갔다. 그 친구는 꽤나 시골에서 자라서 가끔 내가 하는 귀농 이야기에 고개를 젓는 사람이다. 이곳에 와서 그 친구가 아침에 눈을 뜨면 텔레비전을 켜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텔레비전을 켜서 저녁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잠들기 직전까지 리모컨으로 채널을 하염없이 돌리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고, 조금 짜증스러워지려고 했지만. 워낙에 눈치가 빠른 친구라 별말 하지 않았는데도 아침에 티비를 켜는 것은 이틀만에 그만두었다. 하지만 여러 모로 생활 패턴이나 관심사,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 장을 볼 때의 습관 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갈 때쯤 서울로 슥 올라가버렸다. 언제 다시 내려올 것이냐는 물음에 명확한 답변을 내지 않고 가더니, 저녁 무렵 서울에 도착하여 "역시 서울이 좋군" 따위의 문자를 보낸다.


홀로 남은 밤은 다소 무서워서 맥주를 여러 캔 비워내고 과식을 하고서 잠에 들었다. 그렇지만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후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어 조금은 반갑고, 긴 시간 목욕을 할 수 있어 좋다. 


지난 4박5일은 몇 해 전의 실수를 생각하면 위태로운 것일 수도 있었는데 아무 탈없이 지나갔고, 오랜 시간 동안 품어왔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행이다. 어쩌면 꼭 필요했던 시간일 수도 있다. 


여기서 앞으로의 날들을 계획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데 마음이 자꾸 도망치는 것을 붙잡는 게 쉽지 않다. 할 일이 없어서 가끔 담배 생각이 난다.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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