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제 마지막인가
자꾸만 다른 곳으로 달려나가는 생각을 다시 무대에, 다시 이곳에 붙들어두려고 노력했다. 오늘 낮에 떠올렸던 작업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킬 건지, si이랑 화해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공연 직전까지 문자를 주고받고 있던 c와는 언제 만날 건지, 갤러리에 내 사운드 작업들은 제대로 오류없이 재생이 되고 있을지. 생각뿐만 아니라 정신도 붙들어야 했다. 입안의 살을 이로 물어보기도 하고 눈썹아래 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지고 잠에 빠져들어서 당혹스러웠다. 내가 수면부족이어서 그런 거야. 내가 마음이 떠나서 그런 거야.
근데 정말 그런 건가.
얇은 막이 있는 기분이었다. 저들은 저어어어어기서 자신들의 연주를 하고, 나는 여기 무대밖에 있다. 무대와 관객석에는 각기 다른 세계의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막을 뚫고 나와 주었으면, 내가 가장 첫곡부터 줄곧 중얼거렸듯, 나에게 와서 '닿기'를 바랐는데 마지막까지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패.
어제는 뭔가 위태로운 느낌이 있었다. 지휘자를 보지 않고 혼자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같은 건가. 뭔가 합이 안 맞는다는 느낌. 뭔지 모르겠지만 무너지는 걸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첫곡 부를 때, 오 오늘 목상태 나쁘지 않다, 고 생각했다. 보컬도 연주도 그냥 평타는 친다고 생각했다. 근데 안 들려. 안 와. 닿지 않는다. 보통은 유심히 듣는 편이고, 특히 이들의 공연에서는 늘 찰랑찰랑하는 기타에 매료되곤 했었다. 어제는 부러 집중하려고 기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귀를 기울여도 아무것도 없었다. (공연중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한국 밴드의 공연을 보는 것이 4년 만이다. 무슨 사대주의처럼 들릴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하지만, 영국 밴드 애들과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또 이들을 그런 '실력'이나 '기교'로 보고 들으러 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아 psb 공연 생각도 났다. 슈퍼소닉에서 느꼈던 그 '벙찜'. 노래도 잘 하고 의상도 멋지고 무대 디스플레이도 와와 할 만 한데 닿지 않는 느낌. 늙은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굴욕적이잖아.)
생각해보면, 꼭 빼어나게 잘 빠진 무대여야만 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떠올린 단어는 진정성. (이 단어만큼 쓸 때마다 망설여지고 오글거리는 게 없다만, 가끔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나에게 나타날 때가 있다.) 설령 못하더라도 진짜로 하면 그게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뚫고 나오는 게 없었어. 솔직히 단 한 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