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앙스 회화반
프랑스생활기 2010/le français / 2012. 1. 6. 00:17
화요일은 회화반 첫 수업일이었다. 두려움반 설렘반, 살짝 stressé된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낡았지만 어쩐지 정겹게 느껴지는 계단을 올랐다. 헛 너무 비좁다, 라는 것이 첫인상이었다. 네 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들이 칠판을 향해 다닥다닥 두 줄로 있었다. 조그만 책상이 붙어있는 의자에 큰 어른들이 옹기종기 낑겨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두번째 알아차린 건 생각보다 나이가 있는 수강생들이 많다는 것. 이 사람들은 불어를 잘 할까, 어떤 사람들일까, 수업 분위기는 화기애애할까, 상상을 해보는데 문이 끼익하고 열렸다. 선생님 등장.
bonjour, 하고는 선생님 책상에 착석한 선생님. 인상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생기없는 얼굴, 표정없는 얼굴.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짐을 정리하던 Monsieur Catel. 자기 이름을 말하며 자신을 프랑스인이라 소개한다. 한국에 8년 반 정도 살았고 알리앙스와 어떤 외국어고등학교의 선생이라고. 결혼했고 아이가 하나 있다. 끝. 이제 당신들이 자기소개를 하세요.
조금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차갑게 식은 분위기에서 세 시간 회화수업을?
그래 그렇게 세 시간 수업을 하더라. 아무런 대화나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는 회화반이었달까. 질문 5-6개를 한꺼번에 칠판에 써주면 사람들은 노트에 그걸 적고 자기가 대답할 말을 쓴다. 그럼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한국인끼리 '대화'를 한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면 선생님이 한 명을 지목해서 답을 듣는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또 다른 사람을 지목한다. 선생님은 질문을 하고 학생은 답을 하지만, 그것에 대해 추가적인 이야기는,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따금 길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생은 노골적으로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흥미로운 답변을 해서 그것과 관련해서 나도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모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어색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안 좋기 때문이다. 교실 분위기는 서먹하고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를 테면 내가 특별히 할 말이 많은 질문이 있어서 그것에 대해 답변하고 싶어도 선생의 지목을 받지 않으면 말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생의 지목을 받으면 꼭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야만 할듯한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권위적인 학교 교실 분위기였달까.
학생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욕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고, 8년 반이나 한국에 살았다는데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대체 왜 한국에 살죠? 라고 진심 묻고 싶었음.) 이 날 수업은 주제가 영화였는데, 사람들이 가장 최근에 본 영화나 제일 좋아하는 영화로 한국영화 제목을 말하면 일단 첫 반응이 "히이이이익 난 그런 거 몰라". 내가 그런 한국영화를 알 리가 없잖아라는 태도를 취했다. 지금 개봉해서 상영하고 있는 강제규의 마이웨이 같은 것도 전혀 모르고. 자기가 모르더라도 어떤 영화인지 줄거리를 설명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그냥 줄거리를 들으면 될 텐데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게 이상했다.
백만 번 양보해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프랑스인이 하는 수업이니까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려 해도. 말하는 걸 corrigé해주지도 않는데 뭘 어쩌라는 수업인지. 게다가 말을 일부러 엄청 천천히 해줘서 듣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듣기야 rfi든 france info든 tv5monde든 자료가 풍부하고.) 내가 한국인이랑 불어로 대화하려고 세 시간씩 거기에 앉아 있는 거라면, 프랑스어 스터디를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다시 가서 환불 받았지.
선생은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날 수업을 듣고 나서 파리 어학원에서 vincent이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선생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vincent에게 고마웠다고 계속 열심히 하라고(ㅋㅋ) 이메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맨날 바뀌는 그 많은 애들 이름 일일이 다 외우고, 잘 틀리는 거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게 하고, 늘 열정적으로 수업하고, 아무 때고 질문하면 친절하게 알려주고, 불어와 관련된 거면 학원숙제가 아니어도 무엇이든 다 corrigé해주고 ㅜㅠ 사실 vincent 보면서는 신기해했었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대체? 이렇게.
어쨌든 혹 말하기를 향상시키고 싶어서 회화반을 신청하려는 사람에게 CATEL 수업은 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