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슈퍼소닉
윌리문은 쩍벌남이었다. 미끈하게 차려입은 수트, 허벅지 안쪽으로 주름이 쭉쭉 가는 게 조금 야했음. 그건 그렇고 사운드가 아주 엉망이었다. 그래서 미숙한 느낌. 그건 내가 공연에 오랜만이어서도 아니었고, 늙어서도 아니었다. 스탠딩에 서 있는데 사운드가 너무 뭉개져서 들어줄 수가 없었다. 2층 좌석에 가서 앉아봐도 마찬가지. 쇳소리가 무진장 나는 거라. 심지어 윌리문 목소리에서도 쇳소리가. 나는 이 사람 컨셉이 좀더 올드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도 쇳소리가 나서 90년대 락 느낌이 났다. 으으 올드올드. 참고 앉아 있다가 그냥 나왔다.
+ are there any Moon's out there? 할 때는 좀 귀여웠다.
투도어시네마클럽. 올해 들어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밴드. 라인업에 psb와 더불어 tdcc가 떴을 때 이미 내 손은 예매창으로. 윌리문에 너무 실망해서, 같은 무대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투도어도 별로 기대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사운드의 문제가 공연장 자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근데 얘네는 괜찮은 거다. (그냥 윌리문이 미숙이었던 거다.) 요새 일년에 11개월쯤은 전세계 투어를 돌고 있는 이들.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걸 충분히 보여준 무대였던 것 같다. 힘을 주고 빼고 관객을 들었다놓았다 지치지 않고 쳐지지 않게 공연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었다. 셋리스트 순서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고. 멘트가 있네 없네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연달아 서너곡을 연주해도 그냥 좋았다. 아기돼지 베이브 같은 보컬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시간. 한 시간 내내 방방 뛰며 신나게 놀았네. 라이브 정말 잘 하고 목소리 너무 좋다. (다만 나중에 호흡이 딸리시는지 끝음을 뚝뚝 끊어먹어서 조금 아쉬웠다. 씨디처럼 길쭉길쭉하게 뽑아주지.) 앨범 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 팀은 기타가 정말 쩌는 듯. 베이스도 좋다. 보컬도. 결국은 그냥 죄다 좋다는 거네 (ㅋㅋ) 근데 진짜 기타..! 투어리스트 앨범도 좀 듣고 갈 걸 그랬다. 그럼 좀더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가 많았을 듯.
왠지 가장 죄송?스럽고 실망스러웠던 건 펫샵보이즈의 무대. 사실 이번 신보가 너무 별로여서 좀 걱정은 했었더랬다. 3년 만에 보는 펫샵. 2010년 팬더모니엄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곡과 무대의 구성이 아름다웠다. 근데 뭔가 안되더라. (ㅠㅠ) 배가 3년 전보다 조금 더 나오신 닐. 노래는 여전히 음반처럼 잘 하지만, 흥이 나질 않는 걸. 다음 앨범을 잘 준비하셨음 좋겠다. 댄서들은 춤을 잘 췄지. 닐도 노래를 잘 했다. 근데 뭔가 안돼!!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축축 처져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조금 흥에 겨워 2층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가서 춤을 췄지만 초중반은 정말 안타까운 무대였다.
+ i think you MIGHT know the song. 이라며 go west를 소개하는 자신없는 닐 아저씨 힝 ㅠㅠ
++ 우리는 공연 중간에 밖에 나와 담배도 태웠다. 그들이 얼마나 무대를 잘 준비했는지, 무대 세팅과 의상, 댄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동이 없으면 기술을 논하기 마련이지" 라고 말했다. (그래 실은 내가 그랬다.)
공연은 특별한 것 같다. 내가 굳이 직접 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음질이 더 좋고 깔끔한 씨디로 듣는 게 아니라, 공연장에서 내가 당신을 보아야만 하는 '무엇'이 있어줘야만 함. 그건 꼭 앨범과 같은 퀄리티의 '가창력'이나 뭐 그런 게 아닌 듯. (닐은 노래를 여전히 정말 잘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2011년 이후에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투도어가 진리.
카메라 때문에 아이폰을 계속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화질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것인지 아님 이제 얘가 충분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