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인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들은 후부터 줄곧 저 책을 꼭 빌려봐야지 했는데, 김영하가 읽어준 <약국>만큼 다른 글들도 재미있다. 엊그제는 c랑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서로 한 편씩 읽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겨울 음악회>를, 그는 나에게 <범죄자>를. 사실 c가 나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시름시름 졸았다. 텔레마케터 같은 사람이 나왔다는 것과 레베카라는 이름이 자꾸 귀에 들렸다는 것 외에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책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사는 메인 주에 있는 크로스비라는 해안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글에서는 올리브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지만 올리브가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언급되는 글들도 있다. 김영하가 읽었던 <약국> 역시, 올리브의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상하게 좋다. 모든 것은 매우 차분하게 서술되지만 각자의 인생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지고 있다(이런 건 번역투일 것 같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스트라우트는 일순간에 뒤바뀌는 감정이 자아내는 분위기, 공기의 긴장감 같은 것을 굉장히 섬세하게 잘 살려서 썼다. 그리고 단편처럼 구성된 형식이지만 서로서로 때론 긴밀하게 때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꽤 큰 매력이다. 이 책은 예전에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과 같은, 한 명의 대상에 대해 여럿의 화자가 서술하는 형식과도 매우 다르다. 누군가를 파헤치려고 쓰지 않고,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여러 명의 관점으로 조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각기 올리브를 이렇게저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올리브를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서술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나 자기 눈에 비치는(가령 올리브가 같은 공간에 있다거나 지나가는 걸 보았다거나) 일들이 그 사람 중심으로 서술될 뿐인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해 예상치 못하게 알게 되는 일들이 생기거나 하는 것이다. 올리브는 엄격한 학교 선생님이었구나,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학생도 있구나, 덩치가 크구나, 저런 여자와 어떻게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웃도 있구나, 남편 헨리와는 이런 말들을 했구나, 헨리와의 관계에서 이런 위기가 있었구나, 아들 크리스토퍼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졌구나. 이 책은 하나의 시간으로 또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독자는 뒤죽박죽 파편적으로, 그러나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한 사람에 대한, 한 마을의 이야기에 대한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일부러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 지루해보이는 반복, 똑같은 일상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했으면 하는 것.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깊은 이해를 구하는 것. 이런 일에 관심이 있나, 이런 일에 마음이 쓰이나 싶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컴플렉스 같은 게 있다. 가끔. 하지만 몇몇 밴드의 음악은 부분만 들어도 무엇인지 안다. 몇몇 감독의 영화는 주루룩 꿰고 있다. 몇몇 배우의 필모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이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