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화와 재탕과 결국엔 모두 다 잡소리
요새는 "무슨 음악 들으세요?" 또는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하면 그냥 "전 음악 안 듣는데요" 한다. 진짜다. 뭐 그렇다고 어떤 영화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 읽냐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저 도록이나 좀 읽으면 혼자 뿌듯해하고 마는 수준이다. 영화관에는 안 간다. 서점에도 안 간다.
빅뱅 신곡이 나왔을 적에, 그니까 약 2-3주 전에는 걔네들 노래를 들었다. 그것도 오래 들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정말 아무 음악도 듣지 않았다. 이번 학기에는 오랜만에 벨앤세바스찬 앨범을 몇 개 들었지만 솔직히 너무 싱거운 맛이 난달까. 나도 미치고 싶다. 벨앤세바스찬이든 프란츠퍼디난드든 리버틴즈든 펫샵보이즈든 가을방학이니 브로콜리 너마저니 재탕에 재탕에 재탕에 재탕을 거친 맛이 난다. 단물은 이미 빠지고 또 빠졌다. (물론 여전히 "히야~ 역시 대단해~"할 때도 있다. 난 여전히 if you're feeling sinister 앨범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음악을 들을 환경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음악을 들으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집중이 안된다. 굳이 음악까지 안 들어도 집중이 안돼서 힘든데 정신 사나운 요소를 추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장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어서 더 들을 일이 없다. 길 걸어가면서 거리에서 나는 소리 듣는 게 더 좋다. 요샌 그런 점에서 음악도 영화같단 생각이 든다.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그렇다. 해를 거듭하며 영화관에 들어가는 걸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고, 이제는 영화관을 싫어하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영화는 집에서 본다. (사실 그냥 별로 안본다.)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좋아하는데 그럴 때에 들을 만한 것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상태이다. 나는 완전히 고갈된 상태인 것 같다.
작업실 정리를 하려고 이 씨디 저 씨디 넣어가며 듣다가 언니네이발관 앨범을 들었다. 꿈의 팝송. 아직도 앨범 커버만 보면 이 앨범의 첫곡 정도는 맞출 수 있다. 그치만 듣다가 괜찮은 노래의 제목은 맞추지 못하더라. 울면서 달리기가 여전히 괜찮더라. 옛날에도 좋아하던 곡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그래 6집이 나온다고 했었지 ! 기억이 났다. 그치만 쉐쿄바레 들어가자마자 연기소식부터 떠있더라. 책상은 다 치웠는데 작업하기는 싫어서 남의 작업 스케치를 보기로 했다. 전대정의 홈비디오를 보면서 강정석의 홈비디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뻔한 얘기지만 무엇이 작업이 되고 무엇이 취미가 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다시금. 그러면서 또 구조를 생각하고. 아 이게 아닌데. 어쨌든 작업스케치 보다가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월요병 또 하게 되면 가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치만 그래도 이발관에게서 졸업하고 싶다.(학교도 졸업하고 싶다.) 설레고 싶다. 엄청엄청 매력적이어서 마음을 휘리릭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 어디 없나. 나 그냥 게을러서 이렇게 재탕으로 사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