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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라는 공간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왠지 부정적인 어조인 것 같아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그래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듯 하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전시) 공간 중 하나라고 우선 머릿속에 입력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 여기”의 영문명이었다. “nowhere”은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 “노웨어”로 읽힌다. 예전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 이름이 “no where? now here!”이었던 것을 기억했다. “here&now”가 아닌 “nowhere”는 자조와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전시 공간은 듣던 대로 멀고 높았다. 그 거리와 경사 그리고 동떨어진 위치는 자연스럽게 내게 의지와 노력을 요구했다. 일단 그 골목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곳이 얼마나 높고 멀든 간에 나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가기까지 한숨을 돌려야 했다. 이 갤러리에서 저 갤러리로 집집마다 십분씩 휙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여기”는 공간 자체가 일종의 작업일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맥락과 동기, 의도는 전부 다르지만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의 200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의 작업 <바타유 모뉴먼트 Batailles Monument>를 떠올렸다.  일반적 미술 관객의 입장에서 이질적이고 낯선 어떤 장소에 들어간다는 것이 유사하다는 점 외에는 사실 비슷할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가파른 오르막을 걷는 것(“지금 여기”)과 정해진 시각에 운영되는 택시를 타고 카셀 외곽도시로 가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공간에서 머물며 전시를 평소보다 더 유심히 찬찬히 보게 된다는 것(“지금 여기”)와 택시 운영 간격 때문에 그 동네에 얼마간 머물러야 한다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등이 공통점이라 생각했다. 물론 야기되는 결과는 다르다. <바타유 모뉴먼트>에서는 그것이 그 동네와 동네 사람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을 다룬다면, “지금 여기”에서는 공간이 위치한 장소의 조건들이 전시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 같았다.

  힘들게 오른만큼 전시는 좋아야 했다. 홍대 어딘가의 카페에서 본듯한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로비처럼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서는 이십여 명에 사람들이 수업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전시를 아주 천천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기에 이 글에서는 그 공간을 제외하고 말하기로 한다. 시원하게 트인 길쭉한 첫번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받았던 느낌은 왠지 모를 쳥량함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텔레비전 같은 것이 식물과 함께 선반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화면이 보였다. 전체적인 공간의 빛깔은 다소 파랗게 밝은 느낌이었다. 그 빛 아래 모든 것은 명징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화이트큐브”화 되지 않고 본래 그 공간이 가지고 있던 모습을 남겨두면서도 전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할 때, 공간의 느낌과 역사성 등이 너무 많이 남아있거나 영향력이 센 나머지 작업을 보는 데 방해가 되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문화역284가 되기 이전의 서울역에서의 전시들이 그랬고 영등포 커먼센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데 “지금 여기”는 오히려 공간에 남아있는 요소들이 작업에 활력을 주기까지 하는 듯 했다.

  나무 합판 위에 두 개씩 묶여 이리저리 배치된 김재연 작가의 <4810 DAYS>는 눈부신 조명을 받으면서 뭔가 싱그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확실하지만 언뜻 무심하게 인화지를 벽에 고정한 모습도 작업 이미지와 내용에 걸맞다. 그 옆의 오보람 작가의 <노모차> 또한 유사한 느낌을 이어간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업의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평소라면 “시리즈를 찍었네” 하고 슥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진들이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잡아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인물 없이 “노모차”만 찍은 사진이 내 시야보다 조금 낮게 배치되어 있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주차금지를 위한 짱돌들이 딱 있을만한 위치에 있다. 변상환 작가의 작업들이었다. 합판으로 가려놓은 부분과 달리 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윗부분에 창문이 있어 “짱돌”의 위치와 느낌에 영향을 준다. 또한 그 옆 벽면에는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하단부에 있어 “짱돌” 작업에는 좋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에만 나무를 대어 전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적절하게 시선에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세심하게 배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 벽에는 유리와 작가의 <조경사진>도 한 점 있었는데, 처음 그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기하고 기이한 풍경이긴 하지만 건물 사이에 끼인 나무의 사진은 어디에서든 보았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걸음을 더 이동했을 때 두번째 방 벽에 걸린 같은 작가의 다른 사진이 문을 프레임으로 두고 첫번째 방의 사진과 같이 보였을 때,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란히 보이지만 앞뒤로 공간의 격차가 있는 채 놓인 두 작업이 묘하게 작업의 주제와 연결되면서 그냥 사진에서 재밌는 사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민 작가의 <YES WE CAN>도 작업의 배치가 돋보였는데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경찰의 채증사진이 조금 무섭게 다가오면서 작업의 주제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공간 천장 쪽 들보나 옆 벽면 윗쪽 등 예상치 못한 위치에 놓인 사진들이 작업의 메세지를 보다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결국 어떤 면에서 이 전시 리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여기”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그 공간을 가는 여정과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나 다짐들, 공간 내부의 느낌과 공간과 작업 사이의 관계 등이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면서 만약 이 작업들이 다른 공간에 놓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보여지는 방식까지 작업과 전시의 일부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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