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 앤 로자 ginger and rosa
내가 좋아하는 것들 총집합.
elle fanning
red hair
british accent
girls
school uniforms
youth
게다가 이름도 너무 스윗하잖아 진저라니
2013년 1월 8일에 쓴 글
개봉 당시 예고편을 보고 반드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 어째서 이제서야 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 봐도 매력적인 엘르 패닝이 나온다는 이유, 심지어 ginger라는 귀여운 이름을 한 red hair 소녀로 나온다는 점. 헝클어진 머리와 단정하면서도 흐트러진 유럽애들의 복식. 살짝 음울한 기운과 음악까지.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는데 왜 안 봤더라.
어쨌든 보았다. 부스스한 긴 머리에 옷까지 맞춰 입고, 담배를 피우거나 뒷골목에서 남자애들과 키스하는가 하면 욕조에서 소녀잡지를 보고 쎄쎄쎄에 열중하기도 하는 진저와 로자. 궁극의 소녀 판타지를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해밀톤이 매우 좋아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했다. 해밀톤과 더불어 발튀스나 소피아 코폴라, 프랑수아즈 사강 같은 소녀소녀한 사람들 목록에 추가해도 좋을 것 같은 영화라고 느꼈다. 헌데 이 음울한 기운은 뭐지, 핵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인 걸까. 근데 왜 로자는 진저의 아버지를 힐끔대지.
연애하는 아버지와 소녀딸에는 어떤 마성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작업들이 내 눈 앞에 나타는가. (아님 내게 그런 작업들이 눈에 띄는 것일까.)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아름답고 거지같다. 아버지 롤랑드의 모습은 참 매력적이다. 잘 생겼고 사유가 깊으며 신념에 따라 산다. (물론 그 시대엔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타자기로 글을 쓰고 슈베르트를 들을 때 눈물을 흘린다. 심지어 어린 시절의 아픔도 가지고 있다. 멋진 우리 아빠, 쿨한 우리 아빠의 전형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멋지다. 진저도 그런 아빠를 아주 좋아하고 존경한다. 근데 신념이 강해도 너무 강하다. "정상 가족"에 대한 관념 - 그 압제에 저항해왔고, 모든 규칙과 제도에 저항해왔다. 그런 관념에, 규칙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율성", 개인의 독립적인 생각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움직여야 할 뿐이다.
그래도, 내 친구만큼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이는 로자에게도 불편한 기색을 적극적으로 비치지 못하고, 롤랑드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진저는 '자유'라는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관습과 제도, 규칙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규칙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지 못하는 진저가 슬펐다.
세계가 무너진다. 왠지 한심해보이는 엄마보다 늘 의지하고 존경하던 아빠 롤랑드와 어떤 얘기든 다 털어놓는 단짝 로자가 같이 잔다. Roland is sleeping with Rosa.
끝까지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던 롤랑드에게서 우리 아빠의 모습을 겹쳐 보며. 이 영화도 목록에 추가하도록 한다.
+ 영화가 장면도 미술, 스타일링도 예뻐서 캡쳐하고 싶은 게 많은데 파일이 너무 구려서 패스. 거지같이 아름답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