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in paris, science of sleep, post modernism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학과에 다니던 지용이가 생각나지용)
미드나잇인파리와 비교해서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은 얼마나 모던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공드리의 영화란 유치원생에게 양치질 하는 법을 가르치듯이 하나하나 스텝바이스텝 모든 것을 알려주고 확인해주고 심지어 확인사살까지 해주는, 정직하달까 고지식하달까 하튼 그런 영화이다. 현실과 꿈을 왔다갔다 하지만 반드시 들어가면 반드시 나온다. '들어가면 나온다'. 1회 들어가면 1회 나오는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그것도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또박또박 이건 꿈이었고 저건 현실이었고를 되짚어 확인해준다. 이를테면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잠이 든 스테판이 편지를 써서 스테파니 문 사이에 집어 넣는 장면 같은 건 현실과 꿈이 조금 섞인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튿날 바로 스테파니가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해준다. 무슨 소리가 나서 문구멍으로 봤는데 스테판이 벌거벗은 채 물을 뚝뚝 흘리며 내 방문에다 편지를 밀어넣었다고. 말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도 그대로 재현해 회상씬으로 만들어내주는 공드리씨의 친절함이란.
그래도 공드리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는 분명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인 영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현실'에서 명확히 마무리를 짓는 이 영화에서 현실과 꿈을 구별 못하게 되는 것은 그저 약간 머리가 이상한 스테판일 뿐이다. 영화는 끝까지 '영화'로 남고 관객은 영화와 완전히 구별된 존재로 영화 속의 허구를 관조할 뿐이다. 영화 속의 꿈-환상과 영화 속의 현실이 융화되지 않고 헷갈리지 않는 것처럼 나와 영화 사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나는 이곳, 진짜 현실에 앉아있고 영화 너는 거기 스크린에만 존재한다. 마치 서커스를 보고 나왔을 때의 얼떨떨함 같은 거다. 굉장히 현실 같았고 나는 그 환상을 현실로 믿어줄 의향도 충분히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허구일 뿐이라는 걸 깨닫고 천막 밖으로 내쫓기는 기분.
반면 Midnight in Paris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영화 속의 현실은 영화 속의 환상과 뒤섞이고 영화 속의 환상은 또 그 속의 환상과 만난다. 영화 속의 현실에서 주인공은 2011년에 파리를 방문하고 있지만 자정이면 마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에 간다. 그 환상은 단 하룻밤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매일 밤낮으로 두 개의 시간대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만난 이들과 교류하며 (심지어 거투르드 스타인이 주인공의 소설을 읽고 평가해준다. 헤밍웨이도 주인공에게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주인공의 친구들은 스콧과 젤다 핏츠제랄드다.) 자신의 소설을 완성해 나간다. 거듭되는 퇴고를 2011년과 1920년을 왔다갔다 하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환상 속에서의 경험이 '현실'에서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주인공은 (영화를 지켜보는 나 또한) 점점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때론 환상이 현실보다 더욱 리얼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마리옹 꼬띠아르가 맡은 아드리아나라는 사람이 혼란을 더해준다. 1920년대에 대한 주인공의 환상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영화를 보고 있는, 말하자면 진짜 현실의 사람들)도 알고 있는 그 시대의 진짜 사람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영화 속의 환상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오히려 영화 속의 주인공에 불과한 Gil 보다도 더 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우디앨런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인 것이다. 있을 법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인물이다. 영화의 현실에서 환상 속의 인물들은 영화 밖에서는 실재했던 인물들인데 또 그 속에 허구의 인물이 존재한다.
이런 어딘지 머리가 아파지는 설정에 한술 더떠 Gil은 2011년에 센느 강변에서 아드리아나의 회고록을 우연히(!) 발견하기까지 한다. 그 회고록 속에는 Gil이라는 남자가 나오고 Gil이 목걸이를 선물해줘서 둘이 같이 잤다고 쓰여있다. 아드리아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Gil은 2011년의 현실에서 자신의 약혼녀의 목걸이를 몰래 훔쳐서 환상 속의 아드리아나에게 가지고 간다. (소설 원고처럼 현실과 환상 간의 물물이동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회고록의 내용과는 달리 아드리아나와 자는데에는 실패를 하고 만다. (그렇다면 2011년의 아드리아나의 회고록의 내용은 수정되는가? 영화 속의 현실과 환상은 서로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걸까. 경계가 애매해진다.) 대신 그들은 아드리아나의 환상인 belle époque로 마차를 타고 떠난다. 거기서 Gil과 아드리아나는 고갱과 로트렉 등을 만난다. 아드리아나는 그곳에 남겠다고 결정을 하고 마는데, 이처럼 이 영화 속에서는 환상에 들어가고 나오고가 제멋대로이다. 어떤 규칙이 적용되는지 규칙이 있기나 한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이것뿐만 아니라 주인공 약혼녀의 아버지 Gil의 수상한 행동에 Gil을 감시하라고 붙여둔 탐정까지도 그만의 환상(18세기의 베르사이유였나)에 들어가 버린다.
Gil이나 아드리아나는 같은 도시, 그 작디 작은 파리라는 도시에서 동시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시대를 산다. 더구나 Gil은 한
쪽을 선택하지도 않았기에 2011년과 1920년이라는 두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공간도 시간도 한계가 없고 제약이
없다.
이쯤 되면 나는 Gil이 정신병자인가 보다, 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가 없어진다. 그도 아니면 영화니까, 라고 말하려고 해보지만 그것도 영 개운하지가 않다. 떨쳐 버릴 수 없는 찜찜함이 남았다. 내가 현실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계는 정말 '현실'일까? 현실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지금 이 삶이 내가 선택한 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없다. 그런 건 알 수가 없는 거다. Gil도 아드리아나도 탐정도 Gil의 약혼녀도 나도 각자 다른 층위의 현실(layers of reality)에 살고 있는 것뿐이다.
20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