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이 순간을 꽤 오랫동안 소중히 기억하겠구나 라는 것을 그때 그 순간에 직감하는 일이 가끔 있다.
지금이 클라이막스구나 하고 선험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작렬하는 태양이 통유리로 들이치는, 아무도 없는 낮시간의 호텔수영장
적당히 뜨거운 월풀에 앉아 호텔에서 시간을 떼우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는다.
이따금 몸을 이쪽저쪽으로 돌려주며 뜨거운 햇빛을 살에 골고루 맞힌다.
땀이 비질비질 날만큼 더워지면 책을 덮고 차가운 수영장로 건너간다.
잠시 망설이지만 과감하게 푹 머리를 담그면 상쾌하게 시원하다.
몸 속의 뜨거움과 살갗의 차가움을 느끼며 물살을 가른다.
팔다리가 지칠 때까지 수영을 한다.
배스타월 사이에 끼워둔 휴대폰에서 언니네이발관과 검정치마의 신보가 나온다.
물 위에 누워 다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마저 지겨워지면 다시 월풀에 몸을 담근다.
눈이 잔뜩 내린 도시의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상기의 과정을 세 차례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