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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취향/노트'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1.12.15 oscar de la renta
  2. 2009.07.16 <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3. 2008.11.06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4. 2008.11.01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김현진


까옹 미국인도 예쁜 옷을 만들 수 있군요. 그래 미국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으니까. 그치만 어쨌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근데 ss fw 말고도 리조트랑 pre fall 까지 해서 한해 것만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게다가 한 번 할 때마다 육십벌씩 만들어내심.

패턴과 특유의 독특한 색감이 가장 눈에 띈다. 특히 2012ss는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러시아나 몽골의 왕족을 상상하게 된달까, 아님 (역시 아무런 근거없이) 15세기 가운 같은 촌스러움이 느껴짐. 어깨뽕이나 러플 잡는 게 신선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알흠다움 ㅜㅠ
 

중세녀


2011pf


2011pf


2011ss

2011ss


2011ss


2011ss


2011ss

(블레어가 입은거당)


2011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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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모델 넘 못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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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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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ss


2012ss


2012ss

(내 머리 같애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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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느낌의 애들. 패턴 섞는 느낌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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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ㅡ실제적으로ㅡ정리하고 검증하는 데 반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결코 자폐적이 되거나, 외부 세계를 완강하게 거부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오로지 시간적인 문제였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제대로 회복하고, 재정비하기 위한 순수한 물리적인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개미집 흙가루로 쌓은 둑같이 연약하면서도 거대한(혹은 이 거대한 모래성 같은) 개미무덤 같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찾는 것은 그다지 곤란한 직업이 아니다. 물론 그 일의 종류며 내용에 대해서 군소리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일감의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았고, 들어오는 일감은 닥치는 대로 떠맡았다. 마감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글씨도 깨끗했다. 일솜씨도 꼼꼼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적당하게 할 일도 성실하게 했고, 대가가 낮아도 싫은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도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다.


이발소를 나서서,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와 자, 이제부터 무엇을 하지, 하고 생각했다. 겨우 사십오 분이 소비되었을 뿐이었다.


느낀 일은 굉장히 구체적인데도, 막상 그것을 말로 하려면 그런 구체성 같은 것이 자꾸자꾸 엷어져 가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하루에 열다섯 곳이나 레스토랑이며 요리집을 돌고, 내놓는 요리를 한 입씩 먹어보고, 나머지는 전부 남겨놓는 일. 그런 것이 어딘가 결정적으로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해.


하지만 결국 그는 나에게(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미 지나쳐 버린 영역'에 속해 있었다. 내가 그를 거기에 밀어넣은 건 아니다. 그가 스스로 거기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고, 그 두 갈래 길은 여간해선 교차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이었다.


그가 제법 우아한 손놀림으로 가스버너에 불을 켜면, 다들 올림픽 개회식이라도 보는 눈매로 그를 보곤 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건 누구 한 사람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기는 자네의 세계야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버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는 중에 돌연 잠이 찾아왔다. 무대의 암전 같은 일순의 급격한 잠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다. 타인에게 좋은 얼굴을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그는 잘 생기고 인상이 좋을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학생 운동에 관련되어 어쩌고저쩌고 라든지, 애인을 임신시킨 채 버리고 어쩌고저쩌고 라는 퍽도 진부한 상처였는데 그런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때때로 그러한 회상이 원숭이가 점토를 벽에 던지는 것처럼 엉성하게 삽입되곤 했다.


그 아이는 가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혼자 씹고 있었다. 나에겐 단 한 개도 권하지 않았다. 나는 별로 껌 따위는 씹고 싶지 않았지만, 의례적으로 한 번쯤은 권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분은 들었다.


정말 좋은 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렇겠지


모두들 그것을 도피라고 불러. 하지만 뭐 그건 그걸로 상관없어.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네 인생은 네 것이야. 무엇을 구하느냐만 명백하다면, 너는 너 좋을 대로 살면 되는 거야. 남이 뭐라고 하건 알 게 뭐야. 그런 녀석들은 왕악어에게 먹혀 죽으라지. 나는 예전에, 너만한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었어.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건 어쩌면 내가 인간적으로 성장해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내가 영원히 옳은 것인지도 몰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거든.


하지만 어째서 일부러 그런 일을 해야 하지? 다들 제멋대로 저 좋은 걸 먹고 살면 되지 않아. 안 그래? 어째서 타인에게 음식점 지시까지 일일이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어째서 메뉴의 선택법까지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한 후에도 아무 말도 없었다. 극히 상징적으로밖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언제나 상징적인 어투로만 이야기했다.


완고하지는 않아요. 내게는 내 나름의 생각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뿐이에요.


유키는 자기 한 사람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벅찬 것이다. 자신 주변 사람들의 감정까지 일일이 살펴가며 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만큼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 결과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그럼으로써 타인을 통해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사태 진행을 차례로 더듬어보고, 그때마다 내가 취한 행동을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썩 좋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한 번 더 똑같은 입장에 놓인다 할지라도, 나는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할 것이다. 이게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두려워지는 때가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이에요.


이 사람과 결합하면 나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리라, 하지만 결합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리라고 말이에요.


암시적인 침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암시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암시의 암시성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암시성이 현실의 형태를 띠기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잠시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양키즈와 오리온즈의 시합이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시합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쩐지 텔레비전을 켜두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 현실적인 것과 이어져 있다는 표시로.


"다행이군요"라고 나는 말했다. 내가 '다행이군요'라는 대사를 사용하는 것은, 그밖에는 무엇 하나 긍정적인 언어 표현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고, 또 침묵이 부적당하다는 위기적 상황일 경우로 한정되어 있다.


혼자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유키와 함께 있는 게 싫었던 건 아니어씾만, 그와는 상관없이, 혼자 있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고, 실패해도 누구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우스운 일이 있으면 혼자 농담을 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으면 되었다. 아무도 '그런 농담은 시시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루하면 재떨이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되었다. 내가 가만히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도 '왜 재떨이 따위를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취향을 따지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어. 거기서는 '취향이 좋은 사람'이란 '성격이 비뚤어진 가난뱅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야. 동정받을 뿐이지.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


어쨌든 유미요시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지금이라도 곧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껴안고, 데이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보기도 쉽지는 않았다. 그녀가 나의 질투를 간파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평범함이란 흰옷에 묻은 숙명적인 얼룩과 같은 것이다. 한 번 묻은 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일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거야. 입 밖에 내면 그건 거기서 끝나버려. 다시 몸에 깃들지 않아. 너는 딕 노스에게 한 일을 후회해. 그리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정말로 후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 내가 딕 노스였다면 나는 네가 그처럼 간단히 후회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입 밖에 내서 '몹쓸 짓을 했다'고 타인에게 말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그건 예의의 문제고, 절도의 문제야. 너는 그걸 배워야 해.


그리고 나는 그처럼 입바른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상대가 몇 살이든,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든 간에,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은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상상력이 없는 자들일수록 자기 합리화가 재빠르거든.


그 존재 자체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완벽한 귀였어.


영화는 너무 뻔하다 싶을 만큼 진부한 줄거리로 평범하게 진행되어갔다. 대사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음악도 평범했다. 타임캡슐에 넣어서 '평범'이라는 딱지를 부텨 땅에 묻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영화였다.


몸의 기능을 잘 파악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들어 밖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상실돼 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계속 상실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어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게 되면, 나의 세계 인식 자체가 뒤흔들려 버린다.


나 자신과, 내가 연출하고 있는 나와의 격차가 어느 정도 이상 벌어지면 그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구. 나는 그 격차를 이 눈으로 실제로 볼 수 있었어. 마치 지진이 일어나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진 것처럼, 그게 딱 벌어져 있는 거야. 깊고 어두운 구멍이야. 현기증이 날 만큼 깊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파괴해 버리는 거야. 정신을 차려보면 무엇인가를 부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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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 내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선, 나는 파리의 도서관들을 빠짐없이 뒤졌고, 센 강 우안과 좌안의 모든 헌책 장수들과 얘기를 나눴으며, 그의 책이라면 갖가지 판형의 것들을 모조리 사들였고, 그의 전기 두 권을 탐독했다. 그가 러시아 태생임을 알고 나서는, 청어와 보르시치를 좋아하게 되었고, 싫어하던 보드까를 단숨에 털어 넣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의 출판사의 추근추근 물고 늘어진 끝에, 그가 점심 식사를 하던 장소들을 알아내고는, 그곳을 차례로 찾아다녔다. 브레아가의 <리프>에서 <르 프티 도미니크>에 이르는 그 탐방은 일종의 성지 순례나 다름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모두들 그가 즐겨 앉던 식탁이며 그가 먹던 음식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식탁>을 요구했고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의 전기 중 한 권에서, 그의 아버지가 에이젠쉬쩨인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였다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는 샤요의 시네마테크에 관람 신청을 해서 에이젠쉬쩨인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 그 아버지의 눈 속에서 아들의 눈길을 느껴 보리라는 바람에서였다. 나는 그가 살았던 그 사람의 거리, 곧 바크 가에 있는 계단은 죄다 밟아 보았다. 심지어는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다던 여배우와 비슷해지려고, 내 머리털을 금빛으로 물들일 생각까지 했다.


p. 9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였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인데, 그가 쓴 책이 서른한 권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이미 여섯 권을 읽었으니, 1년에 한 권꼴로 읽는다 해도 쉰살이면 끝이 난다. 그럼 그 후엔 어떡하나?


p. 14 나는 책읽기를 다시 배우러 온 거야. 그럼으로써, 그 사람이 내게 예정된 유일한 작가가 아니며 나를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다른 작가들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해.


p. 21 게다가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내가 숭배하는 작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 싶으면 우엇에든 흥미를 느꼈듯이, 나는 그 소설에도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


p. 56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 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p. 74 <나는 애정 어린 포옹이 어찌나 그리웠던지 하마터면 내 목을 조를 뻔했다.>

(그로-칼랭 중)


p. 75 나는 빨대로 우유를 마셨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p. 76 한 마디로, 나는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p. 82 그가 가고 나면 설거지는 내 몫이었고, 그렇게 접시들을 더렵혀 설거지 거리를 남기고 가는 그가 은근히 원망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83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뜸을 들인 건 사실이고, 내가 텔렉스 팩시밀리 전화 등을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20세기 말의 여자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당장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p. 9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p. 98 나는 사랑이라는 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 108 나는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났다.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았다.


p. 109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 영영 그 궁지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 133 그가 데이트를 제안하자, 일거에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평범한 세계, 표준적인 세계로 돌아와 있었고, 그는 아무 남자라도 할 수 있는 일, 즉 여자에게 무얼 마시는 게 좋겠느냐고 묻고 나서 그걸 갖다 주고, 카페 탁자 위에서 여자의 손을 잡거나 여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사는, 그런 일을 하려 하고 있었다.


p. 136 그는 약속 장소며 시간의 결정을 내게 맡겼다. 나는 그런 태도가 마뜩치 않았다. <알사스 학교 앞에서 4시에, 괜찮죠? 그럼, 그때봅시다>라고 시원스럽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어디 아시는 데 있어요? 좋아하시는 게 뭐죠? 카페에서 만날까요, 아니면 찻집에서 볼까요?>라는 말 속에서 헤매고 잇었다.


p. 141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들은 서로 달랐고, <블레이드 러너>는 내가 아주 싫어한 영화였다.


p. 141 묘하게도 그의 뒷모습에 무척 마음이 끌렸다. 그의 걸음걸이는 <나는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걸을을 옮길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며 잘싹잘싹 소리를 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p. 148 엄마에게 전화를 하자, 그래서 스트레스에 대한 처방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어떤 꽃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으렴.>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개양비귀꽃을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파니의 처방을 알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통신 판매 상품 목록을 읽어 보라고 했다.


p. 156 파니는 그 가운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그 사람 물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 157 나는 빨래가 안 말라서 안달을 낸 게 아니라, 빨래가 다 말라 있을 그 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p. 160 누군가 나와 함께 숨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잠결에 나에게 안겨 오거나 내 몸에 부딪혀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p. 138 나는 토탈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물론, 떨어진다고 부서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레몬처럼 노래져서 온종일 스페인 어를 지껄이게 되니까 조심해야 돼.>


p. 138 돌아오는 길에 나는 루카가 토탈과 의사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끔 일본어 두 마디를 가르쳐 주었다. <여보세요>를 뜻하는 <모시모시>와, 물고기가 너무 말썽을 피우면 그 말을 써서 잠잠하게 만들라고 <스시>를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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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공동(空洞)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혼에 거대한 공동을 지닌 첫 세대가 되었어요. 쿨하지 못하면 당장 나가 죽어야 할 것처럼 창피해하고, 가볍고 경쾌하다 못해 그만 양 조절을 못해 천박해져 버린 세대 말예요. p. 16

...실은 거대한 공동이 안에서 텅텅 울려서 불안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p. 17

그러니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딸의 역할을 거부하고 욕심 많은 것을 감추지 않으며 자기 욕망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내숭 떨지 않고 웃고 싶은 만큼 웃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고 울고 싶을 때 우는 씩씩한 딸들은 얼마나 더 많은 미움을 받겠어요? p. 18

내 꿈, 정말로 하고 싶은 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겠다면서 방황할 시간을 갖고 싶어도, 허송세월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어깨 위에 지워진다는 것을 모를 만큼 철없는 나이도 아니고요. p. 23

밥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갖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 투성인 거 아닌가요. 우리가 품고 있는 온갖 걱정은 사실 남에게 꿀릴까봐 그런 거 아닌가요. p. 24

또한 자기계발서는 말랑말랑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서 얄팍한 교훈을 선물합니다.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말들 말이에요. 이를테면 웃으면 복이 온다든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너를 좋아할 거라든가 이성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 호감도가 높아진다든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출세할 거라든가 주변 정리를 잘하면 능률이 올라간다든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든가. p. 29

무서운 말을 집어치우고 그냥 자기를 좀 돌봐주기로 해요.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요리를 하든 친구와 놀든 운동을 하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내 마음을 살찌울 뭔가를 하기로 해요. 이거야말로 진짜 자기계발일 테니까요. p. 31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 힘내고 있는 거, 고생하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아요. 앞으로 고생할 날이 많으니까 너무 고생하지는 말고 살살 하세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때로는 거기서 버티고 서 있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거, 다 아니까. 힘 너무 빼지 말고 우리 잘 버텨내자는 말뿐. p. 35

슬픔이라는 감정을 나약함과 동일시하고, 전염병인 양 혹시 거기 걸릴까봐 결사적으로 피하는 모습들 p. 37

슬픔에서 쾌속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그토록 열렬히 도주하는 것일 테고요. p. 39

패배자란 딱지는 붙이기 싫고,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 말고 95퍼센트로 살 자신도 없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공부부터 하고 봐야죠. p. 39

승자는 모든 것을 다 가져요. 이긴 놈은 무슨 짓을 해도 큰소리 칠 수 있고, 거짓말하는 게 죄가 아니라 거짓말해서 욕먹는 위치인 게 죄니까 더 올라가면 모든 게 해결되죠. p. 40

나 역시 여기서 살아가면서 죽을 수는 없고 혼자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아마도 계속 돈 벌어서 먹고 살려고 싸울 거예요. p. 41

쿨하고 멋진 척해 보려다 몇 날 며칠 속만 쓰린 일을 겪으면서도 나부터 '쿨하게'라는 말 앞에 자꾸만 약해지는 것은, 그 말이 너무나 좋은 말처럼 인식되고 있어서 도무지 그 단어 앞에서 맥을 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 50

어영부영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기분을 즐기지도 말아요. p. 55

내 고통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남의 일처럼 외면하며 자기 자신에게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은, 단기적인 고통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준다는 행위 자체를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거든요. p. 58

모두가 찰떡처럼 의견이 맞는 가족들의 평화란, 분명히 그 밑에 입 다물고 있는 약자가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거였습니다. p. 59

바야흐로 미모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미모 그 자체만으로도 '선함'과 동격의 가치가 된 겁니다. p. 67

지금의 세상처럼 고생해서 돈 버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시대가 있었던가요. 제 손으로 제 밥을 버는 정직한 노동이 이렇게 하찮은 취급을 받던 시대가 또 있었던가요. p. 94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도 우리는 꽃이 됩니다. p. 122

젊은 여자들의 이기심으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준엄하게 야단하는 신문 기사를 읽을 때 반도 읽기 전에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우리의 자궁을 사회의 소유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p. 127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탈까, 어쩌자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냥 없던 일처럼 하하하 웃고 넘어갈 수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이 나에게는 이다지도 오래 남아 올 누드로 믹서의 분쇄 코스라도 통과하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울까, 어쩌자고 나는 남들이 좋게 좋게 넘어가는 그 많은 일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걸까, 어쩌자고 나는 이렇게나 마음은 약하고 정은 헤픈 걸까, 어쩌자고 이렇게나 시시한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사라져버릴 것들에 매혹되는 걸까....... p. 132

그 상처는 같은 인간인데도 이렇게 나와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이질감과 생경함이 주는 고독감에서 비롯됐던 거예요. p. 133

고로케는 성공을 바란다면 도넛은 구원을 바라요. 그리고 그 구원에 다다르는 길은 구멍을 조금씩 채우는 것뿐인데 그것은 남을 이기는 것, 남 위에 올라서는 것, 남보다 더 갖는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거죠. 다만 시시하고 실없는 농담, 사소한 것에 웃는 것, 고로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일에 즐거워하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그 구멍을 메워보는 것뿐입니다. p. 136

그냥 그 구멍을 영원히 메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 여백을 즐기는 것이 우리 도넛의 살길인 것만 같아요. p. 137

살면서 가장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흠집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을 참 싫어한다는 것, 어렵게 자란 사람이나 고생한 사람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사실이었어요. p. 153

이러한 동화들은 가부장제의 보호 아래서 한 치의 흠 없이 순결하게 자라다가 다른 가부장의 품으로 인도될 때까지 자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소녀들이 인생에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속삭입니다. p. 164
(신데렐라, 백설공주, 소공녀 세라, 빨간머리 앤)

이렇게 여자들끼리 홍해처럼 편을 가르는 단어기 때문에 '걸레'는 슬프도록 남성 중심적인 단어고, 섹스 후 남자의 행보에 따라 결정되는 명칭이기 때문에 우울하게 남성 중심적인 단어입니다. p. 210

하지만 동굴이라는 핑계로 잠수나 타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서적 폭력이에요. p. 227

사귄다는 말로 서로에게 공히 인간도장 찍고 이후에는 상견례하듯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서 술한잔하며 얼굴을 익히고, 방과 후나 퇴근 후에 만날 사람과 할 일이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주말에 나도 바쁘다는 사실에 우쭐해지는 기분도 조금 사그라들 때쯤이면 어느새 100일 200일째 만남이 되고, 이때쯤이면 이제 슬슬 싸웁니다. p. 229

그러나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 거예요.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 속의 나, 그 사람 때문에 웃었던 나, 그 사람 때문에 울었던 내 눈물, 이런 것들을 추억하는 것을 끝없이 사랑한 겁니다. ... 결국 내가 돌려놓고 싶었던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행복했던 나였던 거예요. 허망한 일이지요. p. 231

6000만 국민이 보는 앞에서 털을 뜯겨서라도 반드시 살아내야겠다는 그 체념, 그리고 때론 체념 그 자체가 강철 같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p. 250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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