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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취향/노트 / 2014. 9. 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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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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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어메이징비디오\



However, this proved personally disappointing because the form and method conflicted with the objective use of language that he preferred to employ.


The amateur artists have been analogized to sign painters in this series, chosen for their pedestrian methods that were indifferent to what was being painted


By the mid-1980s Baldessari adopted the technique of concealing a face by placing a colored adhesive dot over it. This technique simultaneously flattened the image and emphasized the illusion of the scene. By obscuring a face (or later body parts) Baldessari was able to erase individuality and transform a specific person into an obscure object.


you have to be possessed which you can't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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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로 쓰여진 세계사,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 문학, 서구에서 제작된 TV 드라마, 외국어 교본들에 영감을 받는다. 나는 낯선 곳의 여행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하다. 타인에 의해 해석된 텍스트들은 내게 즐거움을 주는데 나는 이를 다시 해석함으로써 마치 더 새로운 것을 제시할 수 있는 듯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얼핏 기생하는 일로 보이지만 주체에 대해 종속되는 일도, 주체를 변형시키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완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일종의 메타 언어 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Ich bin ein Berliner](2006)이라는 영상작업은 1963년 미국 전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의 독일에서의 연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전라남도 광주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이를 그대로 한국어로 연설하는 것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내용은 이념적 대결이 극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을 시대와 지역이 다른 현재의 상황으로 변화시켰을 때 그 의미가 변역 과정에서 희석되고 일상적 맥락으로 대중화됨을 이야기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 등장한 어린이의 퍼포먼스 때의 일이다. 광주비엔날레 오프닝 당일, 비엔날레 측의 요청에 의해 이 어린이는 다시 한번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웅변가로서 어린이가 웅변을 하는 내내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프닝 당일 이 어린이가 웅변을 하고 있을 때 한 중년의 여성이 이 퍼포먼스를 기획한 작가를 찾았고, 마침내 그녀는 김홍석에게 다가가 어린이를 학대하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김홍석은 웅변을 중단시켰고 이로 인해 그는 이 연설에 대한 어떠한 미술적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실제 작품은 미리 제작된 것으로, 어린이가 암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빙을 통해 완성된 가짜의 퍼포먼스였다). 여기서 문제는 김홍석이 일부러 어린이를 섭외했다는 점에 있다. 어린이는 작가가 의도한 작품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미숙하고 무방비한 존재였고 따라서 이러한 만남에 의해 완성된 작품에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김홍석은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시하게 위해 실제로 어린이를 섭외하는-부모의 강력한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미술적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미술가들로부터 무수히 생산된 참여적 미술이 그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창웤 때문에 김홍석에 대해 조사하던 중 이런 부분을 보게 되었다만. 매번 이런 건, 비슷하지 않은데 나만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아닌가 +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좋아해야 하는 건가 좌절해야 하는 건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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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가져왔다 하더라도 충분히 소화하고 자기화하면 이것 또한 창작.

그 형식이 자기 얘기하기에 가장 적합하면 오케이. reasonable.

유행 알고 있되 자기중심 있어야. 

- 지난주 미문 문선생님



"그 속도가 자꾸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싫었어요"

관심사의 문제가 저에게 이질적인 게 아니라 모두가 동시간대에 다같이 달려들어서 관심을 가지는 상황이

- 지난 토요일 두산아트, 정서영



현실의 허구성 보여주는 것이 작업.

그건 보편적인 게 아니야 왜냐하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지.

여태껏 주어진 전제를 버리고 살 수 있는 것. 전제에 대해서 회의하는 것. 미술은 도구일뿐. 미술이 목적이 아니다. 

- 지난 수요일 윤교수



누나는 항상 진심인데 마지막에 유머인 척 하는 것 같아요

- 엊그제 차ㅅㅎ 

(이건 대단하다. 내가 차ㅅㅎ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 애가 일학기 때부터 이유없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내 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이해한듯. 저건 나랑 몇년을 만나온 사람들도 내가 말해주어야 그제서야 아는 경우가 많았던 얘긴 거 같은데 진짜 갑자기 훅- 하고 들어와서 뜨끔했다.)



being together is enough

- 알랭바디우 지난주 화요일

(낭만적인 말이지만, 믿을 수는 없다. 그런 건 없으니까 ^^^^^ 아닌가. 있긴 한데 영원한 게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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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엔 가세 료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에 참여한 스탭들이 어느 광고 문구를 빌려와 하는 농담이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힘이 나는 사람이라는 뜻일 거다. 그 농담을 전해들은 그는 그냥 씩 웃기만 했다. 홍상수 감독과 가세 료가 만난 건 지난해 일본에서다. 홍상수 감독은 가세 료의 첫인상에 관해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내 영화를 좋아한다고 들었지만 어떤 배우인지는 잘 몰랐다. 출연에 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냥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로비로 들어와 내쪽으로 걸어올 때 쪼가 없는 그 얼굴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촬영 중에도 감독이 배우를 아끼고 배우가 감독을 따르는 모습은 역력했다고 스탭들은 말한다. 그렇게 하여 벌써 닮은 것인가. 가세 료는 ‘귀엽다’는 홍상수식 형용사를 사용하며 인터뷰의 첫 대답을 열었다. 6월 말에 시작하여 2주 동안 촬영했던 홍상수 감독의 열여섯 번째 장편 프로젝트는 7월10일에 모든 일정을 마쳤다. 그날 낮에 가세 료를 만났다.



-이번 영화 어떨 것 같나.

=정말 행복하고 귀엽다.



-홍상수 감독과 일한 느낌은 어떤가.

=최고였다. 지금까지 나의 연기 경험을 통틀어 최고였다. 촬영 기간 중에 싫다고 느껴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매일매일이 놀랍고 새로운 발견으로 넘치는 나날들이었다. 이토록 작고도 아름다운 순간이 날마다 일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홍상수 감독 자신이 일상의 아주 사사로운 것들을 즐기는 분이고 그게 영화의 과정에 전부 살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나.

=홍상수 감독은 “Living Be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말 그대로 생명체라는 건 살아 있으므로 순간마다 갖가지 영향을 받으며 존재한다는 거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느끼지도 못한 커다란 사건이나 주제를 입에 올린다. 홍상수 감독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만을 영화로 만든다. 그 때문인지 그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삶의 어떤 시간을 공유한 듯한 기분이다. 영적인 작업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연출 지시를 받을 때마다 이토록 내가 신용할 수 있는 감독은 드물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예전부터 좋아했다고 알고 있다.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해변의 여인>, 이 세편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처음으로 본 건 (한국말로) <오! 수정>이고. 꽤 오래전에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고 그 뒤로는 극장에서 보거나 DVD로 보았다. 그의 영화는 많이 변화한 것 같다. 시선이나 수용성이 부드러워지고 상냥해졌다. 주관을 통한 자기만의 객관이 생겼다고 할까.



-배우들과의 교감은 어떠했나.

=서울에 도착하던 날 다른 배우들과 만났는데 처음인데도 바로 안심이 되더라. 게다가 한 신 정도만 나오는 조역들조차 그렇게나 멋지고 훌륭하게 연기하는지. 그중에서도 농밀한 연기가 많았던 문소리야말로 정말이지 최고였고 예뻤다.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대사가 길어서 좀 힘들다”고 혀를 내둘렀는데.

=음… 그건 여전히 끝날 때까지 좀 힘든 부분이었다. (웃음)



-당신의 전작 <사랑에 빠진 것처럼>을 연출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리 대본을 주지 않는 건 키아로스타미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이나 똑같다. 하지만 적어도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당일 아침에 주진 않는다. 2, 3일 전에는 주니까. (웃음) 중요한 건 두 감독이 유사한 것 같아도 전혀 다르다는 거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어떤 연출의 목표점이 확실하게 있다. 홍상수 감독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물론 어떤 계산이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거기 있는 사람과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무척 넓은 타입이다. 홍상수 감독이 내게 자주 해준 정말 인상적인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영어로)“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자”(Let’s see what’s happening!)는 거다.



-해외의 거장 감독들과 몇 차례 일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 옴니버스영화 <도쿄!> 중에서 미셸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전부 내가 존경하는 감독들이다. 그들의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의 어떤 겸허함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모두 영화를 만드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홍상수 감독이 가장 순수한 자세를 지녔고, 가장 솔직하다. 영화가 영화에 그친다 하더라도 나에게 연기란 인생 그 자체여서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구원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누군가는 영화로 상을 받고 싶어 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 거명한 감독들은 자기의 일상에서 영화가 정말 필요해서 영화를 만든다.



-일본 내에서 활동할 때는 어떤 기분을 느끼나.

=물론 일본에서의 나는 연기를 통해 돈도 벌고 밥도 먹는다. 상업영화도 하고 광고도 한다. 하지만 해외 감독과 일할 때는 내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일한다. 그들과 시간을 같이 지낸다는 기분으로.



-이번 영화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후일 적당한 기회가 되면 더 듣기로 하고,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열정적인 시네필이라고 들었다.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

=아, 그 질문이라면… 잠깐 실례…. (이날의 인터뷰는 가세 료의 숙소에서 있었는데 그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고 가방을 열고 무언가 한참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다. 뭘 찾는 걸까. 돌아온 가세 료는 종이 세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거기에 열 몇편의 영화 스틸들이 제목과 함께 인쇄되어 있었다. 홍상수 영화를 포함하여 에릭 로메르,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빅토르 에리세, 장 비고, 자크 로지에, 에드워드 양, 필립 가렐, 클레어 드니 등의 대표작들이다.) 이걸 보면 된다. (웃음) 이게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너무 완벽한 것처럼 꾸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취향과도 맞는다. 음악으로 치면 뭐랄까, 나는 다소 거칠고 불완전한 데모 테이프 같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인상적인 목록이다. 예컨대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의 <고단한 삶>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알려줘 보게 됐는데,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있다.

=21살인가, 22살 때인가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자신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방황하던 시기였다. 주인공 소년이 회중전등을 들고 어둠을 비추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 소년이 찾던 무엇이 바로 그 시절의 내가 찾던 무엇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거다. 그러자 그 영화가 나를 구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비극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독립영화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양과 작업할 계획을 가져본 적은 없었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상에 없으니…. 그 밖에라면 차이밍량 같은 대만 감독 영화도 많이 좋아한다. 대만영화의 템포나 분위기에서 내가 어떤 편안함 같은 걸 느끼는 것 같다. 다만 허우샤오시엔 영화는 빼고. (웃음)



-허우샤오시엔 영화와는 어떤 점에서 안 맞는다고 느끼나.

=음, 그러니까, 그의 어떤 영화들은 좋다. 하지만 대체로 나 자신이 그의 영화에 빠져들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일단 본다 해도 기억에 잘 안 남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프랑스의 영화감독 자크 로지에의 영화도 꼽았는데. 잘 알려진 감독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줄거리도 없는 그런 영화다. 그런데 내 일상 어딘가에서 혹은 내 어린 시절 어딘가에서 내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꼈던 어떤 감각이 그 영화들 안에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며 다시 그런 감각을 깨닫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영화를 보며 내내 행복했다.



-마무리해보자. 당신의 목록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작은 것들에서 중요한 것을 찾는 영화들이랄까. 당신이라는 사람의 삶과 기질과도 연관된 문제일 거다.

=내가 고른 이들 영화가 지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퍼스낼리티’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것들은 그것대로 즐길 수 있겠지만 나의 인생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정말이지 설명하기 어려운 신기한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촬영 중 어떤 특별한 기분에 여러 번 휩싸였다. 말하자면, 아, 삶이란 건, 인생이라는 건, 정말 단 한번뿐이구나, 하는 그런 특별한 기분 말이다.



홍상수 어법을 빌린 가세 료 어법을 다시 빌려 말해보자. 대화를 마치고 보니 이상의 인터뷰 중에 적어도 한 가지 일은 막연하게라도 일어난 것 같다. 그가 이번 영화 출연의 경험을 말할 때 그리고 그가 그의 사랑하는 영화들을 밝힐 때 그가 배우를 넘어 사람으로서 무엇을 중시하고 경계하는지 우리가 느끼게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 가세 료가 말했다. “어제 현장편집본을 봤다. 느낌은 분명한데, 홍상수 감독 영화답게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는 역시 모르겠다.” 우리의 대답도 언제나 당신과 같을 것이다. 실은 우리도 잘 모른다. 당신이 경험한 것처럼 매 순간 무수히 무엇인가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우리의 호기심은 다음에 당신을 다시 만나더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가세 료, 당신에게는 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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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름 캠프가 끝났을 때 다섯 명은 제각기 '나는 지금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친구를 만났다.'라고 느꼈다. 자신이 다른 네 명을 필요로 하고 다른 네 명 또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조화로운 어울림의 감각이었다. 



쓰쿠루는 자신에게 어쩌면 알지 못할 비정상적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다. 

눈에 띄는 개성이나 특징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그리고 늘 중용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데도 주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뭔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부분이 자신에게 있다.(있는 것 같다.) 모순을 포함한 그러한 자기 인식은 소년 시절부터 서른여섯 살에 이르는 지금까지 인생의 이런저런 부분에서 그에게 당혹감과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때는 미묘하게 어떤 때는 나름대로 깊고 강하게. 



쓰쿠루는 가끔 자신이 왜 이 친구들 그룹에 속하게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진정 내가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오히려 내가 없으면 나머지 네 친구는 더 자유롭고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다들 아직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뿐이 아닐까? 그걸 깨닫는 건 시간문제 아닐까? 생각할수록 쓰쿠루는 혼란스러웠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란 마치 단위가 없는 물질을 계량하는 것과 같았다. 저울의 바늘이 지잉 소리를 내며 딱 한 군데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언젠가 그 친밀한 공동체에서 탈락하거나 방출되어 혼자 덩그러니 남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늘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있으면 어둡고 불길한 암초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런 불안이 자주 고개를 쳐들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우리는 흐트러짐 없이 조화로운 공동체 같은 걸 유지하려 했던 거야."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을지도 몰라."

"그렇게 존재하고 존속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아마도."

사라는 눈에 힘을 주어 가늘게 뜨고 말했다. "우주처럼."

"우주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렇지만 그때 우리는 그게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소중히 지켜 가는 것. 바람 속에서 성냥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처럼."

"케미스트리?"

"거기 우연히 생겨난 장의 힘. 다시는 재현되지 않는 것."



"그런 식으로 단호하게 거부당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게다가 상대는 누구보다 신뢰하고 내 몸의 일부처럼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이었어. 원인을 파헤친다든지 오해를 수정하기 이전에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고 말았던 거야. 여간해선 일어서기도 힘들 만큼. 내 속에서 뭔가가 잘려 나가 버린 것 같았어."



"원인을 따지고 들면 거기서 어떤 사실이 드러날지,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던 거였겠지. 진상이야 어떤 것이든 그게 나를 구해주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신 비슷한 것이 있었어."



"당신은 사소한 인간도 아니고 보잘것없는 인간도 아니야."

"고마워." 쓰쿠루는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만히 눌렀다. "하지만 그건 내 머릿속의 문제야."



그럴 때, 그는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니었다. 다자키 쓰쿠루이면서 다자키 쓰쿠루가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끼면 그는 자신의 몸을 떠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무통의 장소에서 아픔을 견디는 다자키 쓰쿠루의 모습을 관찰했다. 의식을 강하게 집중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 감각은 지금까지도 언뜻언뜻 그의 내면에서 되살아났다. 자신을 떠나는 것. 자신의 아픔을 타인의 것처럼 바라보는 것. 



습관이 그의 생활을 앞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완벽한 공동체를 믿지 않고 케미스트리의 온기를 몸으로 느끼지도 않았다. 



"성찰을 낳는 것은 아픔입니다. 나이도 아니고, 하물며 수염은 더더욱 아니죠."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귀향했을 때 혹시 소식을 듣고 네 친구가 조문을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하면 될까? 그러나 결국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쓰쿠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쓸쓸했다. 그것이 이제는 정말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프란츠 리스트, Le Mal du Pays

라자르 베르만 Lazar Berman

클라우디오 아라우 Claudio Arrau



그렇다고 해도 그 연하의 친구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대체로 네 명의 일은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는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자신이 네 친구에게서 노골적으로 거부당한 아픔은 그의 마음속에 늘 변함없이 존재했다. 다만 그 무렵에 와서는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어느 순간 발바닥까지 밀려오고, 어느 순간에는 멀리 가버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대체 하이다가 자신의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또는 어떤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두 사람은 많은 것을 놓고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따금씩 쓰쿠루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 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 장애물이 네 친구에게 거부당해서 생긴 것인지, 또는 그 일과는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던 구조적인 것인지, 쓰쿠루는 가려낼 수 없었다. 



"애당초 경험하지 않은 것이 좋았을지도 몰라."하고 쓰쿠루는 말했다. 

"결국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분은 잘 알겠어." 사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아픈 상처를 입고 많이 낙담하고 말았다 해도 그 사람들을 만난 게 당신한테는 역시 좋은 일이었다는 느낌이 들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그런 식으로 빈틈없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니,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그 결합이 다섯 명 모두에게 이루어졌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여기서부터가 정말 말하기 힘든 부분이야. 표현하기가 힘들어. 일단 말로 해 버리면 너무 단순화되거든. 그렇지만 줄기를 세워 논리적으로 해설할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감각적인 거니까."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 상대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혼자 덩그러니 남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몰라."



아무튼 하이다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자 그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였는지, 하루하루의 생활에 얼마나 풍성한 색채감을 주었는지 쓰쿠루는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는 이윽고 사라진다.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또는 실망하고 화가 나서) 떠나 버리는 것 같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설명도 없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따스한 피가 흐르고 아직도 조용히 맥박 치는 인연의 끈을 날카롭고 소리없는 손도끼로 싹둑 잘라 버리는 것처럼.

분명 자기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낙담케 하는 뭔가가 있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혼자라는 것은, 어쩌면 고립의 이중 부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방인인 그가 여기서 고립된다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인 일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기, 쓰쿠루, 우리가 우리였다는 거,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었던 거야. 우리가 하나의 그룹으로 일체감을 가졌다는 것 말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것이 몇 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사람한테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사라는 낙담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난 두려워.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또는 무슨 잘못된 말을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그냥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그렇지만 참 이상해." 에리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아름다운 문양의 도자기, 작은 새들의 지저귐,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알프레트 브렌델이 단정하게 연주하는 <순례의 해>>. 그의 몸에 살며시 닿은 에리의 풍만한 가슴이 전한 감촉. 따스한 입김과 눈물에 젖은 볼. 잃어버린 몇 가지 가능성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가족들은 쓰쿠루가 벌써 폐기 처분해 버린 옛날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으려 했다. 그것을 재현하여 보여 주기 위해 그는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했다. 나고야의 거리도 묘하게 서먹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었다. 이미 거기에는 쓰쿠루가 갈구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잇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무얼 기대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야기가 끝나서 조금 당황했고 약간 실망했다. 이렇다 할 모험도 판타지도 없었다. 핀란드로 간 쓰쿠루를 보면서 자꾸만 노르웨이를 생각했다. 어쨌든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는 끝났고, 그는 사라와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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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ckum nordström




mamma ander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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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일 파리 불법 체류기라는 서브타이틀에 끌려서 목차를 살펴보게 된 책. 목차를 보고 이들 여행의 대략적인 개요가 내 머릿속에 대충 그려지자, 자루와 나의 이야기와 유사하게 느껴져서 구입하게 되었다. 

지금은 첫번째 꼭지를 다 읽은 상태. 지은이의 대학생활이 어땠고, 현실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 프랑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이런저런 얘기들이 섞여 있다. 문득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했던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또 다시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혁명을, 자유를, 예술을, 탈권위를, 무정부를 상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다. 중심이 사라진 똘레랑스랄까. 극단적 상대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때는 나의 '방황'이나 '혁명적 삶에 대한 고민에 의한 경험' 등을 포장해서 다시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며 '성공'하는 것이 야비하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고 고고하게 예술가적으로 상업적 성공(그게 대체 뭔지 잘 모르겠지만)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어도 특이한 이력을 내세워 이목을 끄는 것 얍삽해보였다. (길위의 학교이던가, 그런 책을 냈던 사람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결국은 다시 돌아오는 삶이 싫었던 건가.) 그래서 언니가 내게 프랑스에 있을 때의 일을 책으로 쓰라고 했을 때에도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이도저도 아니다. 학교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인생을 생각하면 그만하고 싶다. 그래도 간간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건 파리,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이 남쪽으로 뚫린 코딱지만한 스튜디오, 수십가지 요거트들 중에 무얼 다음주 아침식사 때 먹을까 고민하던 일 따위. 나는 거길 가면 즐거울까. 마냥 즐겁지만은 않겠지, 그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여기보다 나은 것들이 있을까. 이들은 파리에서 무얼 했고, 어떤 걸 느꼈고, 어떤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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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불안정한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라는 거야."

프란스할스에 대해 쓴 글?을 다시 보다가 이런 quotation이 있더라. 그때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하우? 어떻게 내가 가진 불안정한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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