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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관련 책

얄팍한 취향/노트 / 2015. 12. 26. 16:33

세상에는 자기 손으로 자기 집을 지은 수많은 아마추어 빌더들이 있다. 실용적이고 경제적이고 아름다울뿐더러 장인 정신이 깃든 핸드빌트 집. 1973년 여름에 출판되어 무려 42년 동안 30만부 이상이 팔린 <셀터>와 그 후속편 <행복한 집구경>이라는 책이 그 수많은 예를 증명한다.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숨어 있는 잠재적 창조력이 고무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와 함께 크리스 앤더슨의 <메이커스>라는 책도 추천한다. 단순 소비자의 한계에서 벗어난 그 시작부터 끝까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제작자로 변신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될 거라고 예고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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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기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기지만 그것은 또한 예기치 못한 문을 열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이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엇을 하기로 한 선택보다 안 하기로 한 선택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고 더 흥미로운 것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를 수는 있으나, 하기 싫은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압니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 없게 보장해 줄 자가제한을 겹겹으로 쳐둡니다. 그것이 의외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줍니다. 당신이 그 문을 외면하지 않고, 종착지가 어딘지 모르는 그 길을 따라 나선다면, 당신은 이미 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있겠지요. 이전에 하던 것과 비교해 보니 더 좋습니다. 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그 길을 따라 갑니다. 변수를 넣어 봅니다. 또 다른 변수를 실험해 봅니다. 그것이 이끄는 방향이 맘에 들지 않으면, 방향을 선회해 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젊은 작가들, 그리고 아무든 내 말에 귀 기울일 사람들에게 내가 들려 주기 좋아하는 조언은, 영감이 떠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감은 아마추어를 위한 거예요. 작가는 작업을 하지요. 구름이 갈라지고 천둥 번개 같은 것이 나의 뒤통수를 치기나 기다려서는 작업을 할 수 없어요.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모두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작업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말이지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에게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가만히 앉아서 위대한 창작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린다면, 그렇게 해서 뭔가가 나오려면, 아마 꽤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할 겁니다. 반대로, 묵묵히 작업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생각도 떠오르고 일도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내가 거부하는 또 다른 뭔가가 나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밀어 붙이기도 합니다. 영감은 절대적으로 불필요하고, 기만적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뭔가 그럴싸한, 멋진 아이디어가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절대 그렇게 해서 나오지 않아요.


Chuck 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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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얄팍한 취향/노트 / 2015. 9. 23. 10:20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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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이 책인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들은 후부터 줄곧 저 책을 꼭 빌려봐야지 했는데, 김영하가 읽어준 <약국>만큼 다른 글들도 재미있다. 엊그제는 c랑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서로 한 편씩 읽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겨울 음악회>를, 그는 나에게 <범죄자>를. 사실 c가 나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시름시름 졸았다. 텔레마케터 같은 사람이 나왔다는 것과 레베카라는 이름이 자꾸 귀에 들렸다는 것 외에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책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사는 메인 주에 있는 크로스비라는 해안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글에서는 올리브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지만 올리브가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 언급되는 글들도 있다. 김영하가 읽었던 <약국> 역시, 올리브의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상하게 좋다. 모든 것은 매우 차분하게 서술되지만 각자의 인생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지고 있다(이런 건 번역투일 것 같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스트라우트는 일순간에 뒤바뀌는 감정이 자아내는 분위기, 공기의 긴장감 같은 것을 굉장히 섬세하게 잘 살려서 썼다. 그리고 단편처럼 구성된 형식이지만 서로서로 때론 긴밀하게 때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꽤 큰 매력이다. 이 책은 예전에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과 같은, 한 명의 대상에 대해 여럿의 화자가 서술하는 형식과도 매우 다르다. 누군가를 파헤치려고 쓰지 않고,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여러 명의 관점으로 조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각기 올리브를 이렇게저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올리브를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서술이 아니다. 자신의 삶이나 자기 눈에 비치는(가령 올리브가 같은 공간에 있다거나 지나가는 걸 보았다거나) 일들이 그 사람 중심으로 서술될 뿐인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올리브 키터리지에 대해 예상치 못하게 알게 되는 일들이 생기거나 하는 것이다. 올리브는 엄격한 학교 선생님이었구나,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학생도 있구나, 덩치가 크구나, 저런 여자와 어떻게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웃도 있구나, 남편 헨리와는 이런 말들을 했구나, 헨리와의 관계에서 이런 위기가 있었구나, 아들 크리스토퍼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졌구나. 이 책은 하나의 시간으로 또는 시간순으로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독자는 뒤죽박죽 파편적으로, 그러나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한 사람에 대한, 한 마을의 이야기에 대한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일부러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 지루해보이는 반복, 똑같은 일상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했으면 하는 것.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깊은 이해를 구하는 것. 이런 일에 관심이 있나, 이런 일에 마음이 쓰이나 싶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컴플렉스 같은 게 있다. 가끔. 하지만 몇몇 밴드의 음악은 부분만 들어도 무엇인지 안다. 몇몇 감독의 영화는 주루룩 꿰고 있다. 몇몇 배우의 필모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이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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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아주 따분한 여자로 보이는 것이 인생의 주된 목표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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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아니었으되 미인을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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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에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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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고 세련된 그런 거 말이야. 행복한 소수를 위한 예술 Art for the happy f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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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확신을 과감히 말하는 용기도 있었어.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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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상을 남길 만큼 훌륭한 포도주를 사가지고 갈 돈이 없었다.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하다가 프랑스인 커플에게 포도주를 들고 간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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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하기보다는 수줍을 타는 편이 오히려 낫고, 숨 막히는 완벽함으로 모든 살마을 압도하는 것보다는 약간 허술하여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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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히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주 폭넓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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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를 형편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가끔 불꽃이 튀는 부분도 있었고 몇몇 시들은 신선하면서도 간절한 구석이 있어서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지. 하지만 대체로 보아 결과는 평범했고, 그런 평범한 시인으로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전망에 겁을 집어먹고 그만두기로 한 거지. 



대체로 글이 잘 안 나가는 것은 작가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제에 대하여 엉뚱한 접근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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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에다 집어넣는다면 비록 거기에 있으되-바로 코앞에 있으되-영구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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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둘은 이것이 딱 한 번만의 실험이라고 약속했으므로, 그 실험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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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섹스는 섹스일 뿐이야. 두 사람이 그걸 원하는 한, 모든 섹스는 선량한 거야. 신체는 누가 와서 만져 주고 키스해 주는 것을 좋아해. 눈을 감고 있으면 누가 네 몸을 만지고 키스하는지는 문제가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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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위스키를 홀짝거리고 앞의 벽을 쳐다보면서 너희 둘은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그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하지만 침착성을 발휘하면서 알코올이 그 위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야, 그녀가 말한다, 쾌락을 받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 못지않게 쾌락을 주는 데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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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진행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스와 노가 교차하는, 오랫동안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움직임이 되어야 했다. 너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더 좋았다. 혹시 어느 한쪽이 생각을 바꾸어 뒤로 빼려 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상상을 자극하는 생각은 상상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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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의 여고생은 너무 수줍고 자의식이 강해서 그 어떤 성적인 신호도 보내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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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때때로 충격적일 정도로 어린아이 같았다(예를 들면 워커에게 책을 어디서 찾았는지 말해 주지 않는 등 <비밀>에 대한 소녀 같은 집착).





한국어여서 그런지 짧아서 그런지 (아님 야해서 그런지) 그 어떤 폴 오스터 소설보다도 빨리 읽어내려갔는데 중반 이후에는 좀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의식적이다. 저자와 진실과 허구와 그런 것들을 섞어내는 것에 너무 몰두한 느낌이랄까. 아슬아슬함, 문학적이고 지적인 학생과 가난, 젊음, 피와 섹스 같은 것들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어서 속도감있게 읽히기는 하나 책 표지 뒷면에 적힌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쓴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는 뉴욕 타임스의 평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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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의 글


p.38 

내 친구인 여성은 인도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타누(Tanu)였다. 하지만 이 순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 친구가 아프가니탄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타누를 이미지로 의식하게 되었다. 


p.38

이러한 순간에 감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그건 내 의도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 내가 그걸 의도해야 했었나?"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수용자 측이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럴 때 타누의 실제 정체성은 보는 이가 수용하는 그녀의 정체성과는 무관하다. 어떻든 이미지는 늘 타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향은 보는 이의 분별(differentitation)을 요구한 것이고, 두 번째 방향은 보는 이한테 수용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맞아. 의도한 거야. 전에 그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그걸 의도하게 되었을 테니까."


p.43

요약은 보통 읽기도 빠르고 쓰기도 빠르다. 시간의 틀은 요약을 필요로 하는 문화와 관계가 깊다. 



벨러 타르(Bela Tarr)의 결정. 


p.47

롤랑바르트는 글이 오랫동안 안 써질 때 이용하던 다양한 기술 중 하나로 출판하지 않을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p.49

<템퍼 클레이>는 제작 과정에서나 작곡에서나 저항과 변명 사이의 경계선의 발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마침 시와 음악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장치들을 이용했다. 압운(rhyme), 제창(unison), 빠르기(speed), 성조(voice), 반음계적 화성 변화(chromatic harmonic shift) 등이 그것이다. 




_

스티븐 그린블라트의 글


p.66

"하지만 네 마음도 그러하냐?" 그는 적어도 코델리아로부터 공식적인 복종 이상의 무엇을, 권위에 대한 복종과 함께 웨일랜드의 설명 끝에 묘사된 거의 성애 같은 갈망이 묘하게 뒤섞인 무엇을 원한다.



_최빛나의 글

p.107

김성환의 작품은 위와 같은 재앙적 사건들을 기록하지도, 그것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르포르타주 형식과는 거리가 먼 그의 작업은 심지어 비평의 한 형식으로조차 기능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김성환이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일련의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현실이란 소통의 형태가 변칙적이며 이야기의 파편들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곳이다. 누가,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에 대한 서술이 없는 이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은 감상자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p.115

이 같은 상황에서 퍼포먼스 작업 등 살아있는 노동력을 그 재료로 삼는 모든 작품이야말로 가장 모호한 대접을 받게 된다. 


p.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 이후의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거대하고도 만질 수 없으며 다루기 까다로운) 자본주의의 망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억압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곳에서마다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조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유월>


p.117 

김성환은 <유월>을 제안하면서 "공적 리듬을 배반"하는 것이 <유월> 활동의 핵심 주제라고 내게 말했다. 


p.120

내가 이 순간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 공유하고 싶은지, 그러고는 내 생각을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구들끼리의 비공개 모임 안에서일지언정 퍼포먼스와 강연이 반복되는 이 훈련은 꽤나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다. 진행 과정은 이랬다. 우선,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주 그저 반응(reaction)-응답(response)과는 별개의 의미에서의 반응-으로 말을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둘째, 제한된 시간 틀 안에서 주어진 수단을 가지고 (이왕이면 말과 입만을 사용하진 말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구상해야 했다.



_

그렉 스미스의 글


p.151

그러나 미디어의 힘이 점점 확산됨에 따라,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인' 문화와 관계를 맺는 것과 우리가 사는 지역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지는 듯하다.



p.153

이 사례는 우리의 지역 환경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얻은 의미와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_

김성환과 dogr의 대화


p.174

김 "한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대륙의 시간적 흐름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시간 흐름대로 상대를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본인의 무지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둥을 노래하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듯이."



김 "1:1 비율이라는 발언은 생산이란 것에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ready-made) 생산물이 쓰인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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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er videotape performance Untitled (2003), 60 minutes in duration, Fraser recorded a hotel-room sexual encounter at the Royalton Hotel in New York, with a private collector, who had paid close to $20,000 to participate,[10] "not for sex, according to the artist, but to make an artwork."[11] According to Andrea Fraser, the amount that the collector had paid her has not been disclosed, and the "$20,000" figure is way off the mark. Only 5 copies of the 60-minute DVD were produced, 3 of which are in private collections, 1 being that of the collector with whom she had had the sexual encounter; he had pre-purchased the performance piece in which he was a participant. The contractual agreement, arranged by Friedrich Petzel Gallery, outlining the performance posed as a medium questioning male power in the art world connecting it to female prostitution and art 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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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라는 공간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왠지 부정적인 어조인 것 같아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그래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듯 하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전시) 공간 중 하나라고 우선 머릿속에 입력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 여기”의 영문명이었다. “nowhere”은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 “노웨어”로 읽힌다. 예전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 이름이 “no where? now here!”이었던 것을 기억했다. “here&now”가 아닌 “nowhere”는 자조와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전시 공간은 듣던 대로 멀고 높았다. 그 거리와 경사 그리고 동떨어진 위치는 자연스럽게 내게 의지와 노력을 요구했다. 일단 그 골목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곳이 얼마나 높고 멀든 간에 나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가기까지 한숨을 돌려야 했다. 이 갤러리에서 저 갤러리로 집집마다 십분씩 휙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여기”는 공간 자체가 일종의 작업일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맥락과 동기, 의도는 전부 다르지만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의 200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의 작업 <바타유 모뉴먼트 Batailles Monument>를 떠올렸다.  일반적 미술 관객의 입장에서 이질적이고 낯선 어떤 장소에 들어간다는 것이 유사하다는 점 외에는 사실 비슷할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가파른 오르막을 걷는 것(“지금 여기”)과 정해진 시각에 운영되는 택시를 타고 카셀 외곽도시로 가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공간에서 머물며 전시를 평소보다 더 유심히 찬찬히 보게 된다는 것(“지금 여기”)와 택시 운영 간격 때문에 그 동네에 얼마간 머물러야 한다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등이 공통점이라 생각했다. 물론 야기되는 결과는 다르다. <바타유 모뉴먼트>에서는 그것이 그 동네와 동네 사람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을 다룬다면, “지금 여기”에서는 공간이 위치한 장소의 조건들이 전시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 같았다.

  힘들게 오른만큼 전시는 좋아야 했다. 홍대 어딘가의 카페에서 본듯한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로비처럼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서는 이십여 명에 사람들이 수업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전시를 아주 천천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기에 이 글에서는 그 공간을 제외하고 말하기로 한다. 시원하게 트인 길쭉한 첫번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받았던 느낌은 왠지 모를 쳥량함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텔레비전 같은 것이 식물과 함께 선반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화면이 보였다. 전체적인 공간의 빛깔은 다소 파랗게 밝은 느낌이었다. 그 빛 아래 모든 것은 명징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화이트큐브”화 되지 않고 본래 그 공간이 가지고 있던 모습을 남겨두면서도 전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할 때, 공간의 느낌과 역사성 등이 너무 많이 남아있거나 영향력이 센 나머지 작업을 보는 데 방해가 되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문화역284가 되기 이전의 서울역에서의 전시들이 그랬고 영등포 커먼센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데 “지금 여기”는 오히려 공간에 남아있는 요소들이 작업에 활력을 주기까지 하는 듯 했다.

  나무 합판 위에 두 개씩 묶여 이리저리 배치된 김재연 작가의 <4810 DAYS>는 눈부신 조명을 받으면서 뭔가 싱그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확실하지만 언뜻 무심하게 인화지를 벽에 고정한 모습도 작업 이미지와 내용에 걸맞다. 그 옆의 오보람 작가의 <노모차> 또한 유사한 느낌을 이어간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업의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평소라면 “시리즈를 찍었네” 하고 슥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진들이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잡아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인물 없이 “노모차”만 찍은 사진이 내 시야보다 조금 낮게 배치되어 있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주차금지를 위한 짱돌들이 딱 있을만한 위치에 있다. 변상환 작가의 작업들이었다. 합판으로 가려놓은 부분과 달리 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윗부분에 창문이 있어 “짱돌”의 위치와 느낌에 영향을 준다. 또한 그 옆 벽면에는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하단부에 있어 “짱돌” 작업에는 좋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에만 나무를 대어 전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적절하게 시선에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세심하게 배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 벽에는 유리와 작가의 <조경사진>도 한 점 있었는데, 처음 그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기하고 기이한 풍경이긴 하지만 건물 사이에 끼인 나무의 사진은 어디에서든 보았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걸음을 더 이동했을 때 두번째 방 벽에 걸린 같은 작가의 다른 사진이 문을 프레임으로 두고 첫번째 방의 사진과 같이 보였을 때,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란히 보이지만 앞뒤로 공간의 격차가 있는 채 놓인 두 작업이 묘하게 작업의 주제와 연결되면서 그냥 사진에서 재밌는 사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민 작가의 <YES WE CAN>도 작업의 배치가 돋보였는데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경찰의 채증사진이 조금 무섭게 다가오면서 작업의 주제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공간 천장 쪽 들보나 옆 벽면 윗쪽 등 예상치 못한 위치에 놓인 사진들이 작업의 메세지를 보다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결국 어떤 면에서 이 전시 리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여기”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그 공간을 가는 여정과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나 다짐들, 공간 내부의 느낌과 공간과 작업 사이의 관계 등이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면서 만약 이 작업들이 다른 공간에 놓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보여지는 방식까지 작업과 전시의 일부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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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이 자는 동안 나는 팔꿈치를 괴고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면 그의 얼굴은 언제나 더없이 온화하고 순해보였고, 그러면 나는 기숙사방의 희미한 불빛속에서 그가 언젠가 나와 결혼할 남자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내가 남은 생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가정을 일구고 그에 곁에서 늙어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런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로버트와 콜린. 


그날 저녁 내가 늦게 로버트의 아파트에서 돌아왔을 때 기숙사 방문 앞 복도에서 콜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소속 수영팀 운동복 차림이었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문가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내가 어디 있었는지 염려하는 마음을 읽었고, 그가 아무말없이 내 손을 잡고 벽에 기댄 내게 키스했을 때 나는 나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밤새도록이라도 나를 기다렸을 터였다. 나는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고 그것으로 인해 그가 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돌연 확인했음을 깨달았다. 뭔가 의심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그랬을리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는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키스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주기를 바라면서 그저 그에게 키스를 하려 했고 그는 나의 키스를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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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다

얄팍한 취향/노트 / 2014. 10. 24. 19:53



아나바다 운동은 IMF 구제금융 요청 사태가 발생한 이듬해인 1998년 등장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고 만든 운동으로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의 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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