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가 끝났다. (굿와이프도 끝났지만 아직 마지막화를 못 봤다.)
시작이 흥미로운 드라마는 많고, 중반까지 흥미롭게 끌어가는 드라마도 꽤 있지만 엔딩이 잘 나오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다. 4화 정도까지는 왠만한 수준의 드라마면 다 구미를 당기게끔 잘 만든다. 그렇지만 5,6화 넘어 가면서부터 힘이 쫙 빠지는 드라마가 많다. (또! 오해영도 9화에서 피크를 찍고 이후엔 좀 기운이 빠진 면이 많고.)
시스터후드
청춘시대와 굿와이프는 '아 진짜 좋다', '속시원하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드라마들이다. 나의 팔월 금토를 책임졌다고나 할까. 이 둘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그 여러 가지 중 유사한 점도 많다. 우선 청춘시대를 생각해보면, 일단 5명의 여자들이 한 집에서 꽁냥꽁냥 이런저런 일을 겪고 서로 아름다운 시스터후드를 나눈다는 게 정말 너무 좋다. 이것은 처음에는 서로를 오해하거나 자기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하는 단계에서 좀더 깊이 있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관계의 성숙의 차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좋지만, 한국 드라마 내에서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 간의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아주 좋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마치 사회 통설인 것처럼 여자의 적은 여자라든가 하는 헛소리를 많이 듣는다. 드라마 속에서의 여자들은 거의 항상 남자를 두고 경쟁하는 서로의 적이다. 주로 헐뜯고 깎아 내리고 뒤에서 어떤 음모를 조작하는 느낌으로 많이 나온다. (물론 드라마라는 것의 특성상 삼각, 사각관계들을 만들기에 남자도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적으로 많이 등장하긴 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남자의 경우 헐뜯고 깎아 내리는 모습보다는 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애정공세를 하는 식으로 많이 나오는 듯.) 어쨌든 청춘시대에서는 여자가 셋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식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잠시 정예은과 강언니 사이의 텐션이 있었지만 이건 그 쓰레기 고두영 새끼가 문제였던 것이므로 패스.)
주체적인 연애
그리고 아주아주 마지막까지도 남자 캐릭터들은 완벽하게 들러리로 남는다는 점도 신선하고 좋다.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자기 일과 계획에 독립적이고(윤선배) 자신이 준비되지 않은 얘기는 좀 미뤄두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줄 안다(유은재). 심지어 모쏠 송구라도 연애를 계속 못해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어떤 모습을 따라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본인의 '일'에서도 제법 명확한 원칙이 있고 당당하며, 자기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강언니). 물론 의존적인, 바보 같아서 안타까운 연애를 하던 (그러다가 큰코 다친 ㅠㅠ) 정예은도 있어서 더 좋기도 하다. 완전한 현실 반영 같은 느낌이어서 소름 돋고 무서운데, 그게 지금 이 나라 현실이거든....
가치판단의 부재
강언니가 대학생이 아니고 '용돈'을 받고 아저씨들과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한 하우스메이트들의 반응,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언니의 태도, 그리고 나중에 강언니 스스로가 심경의 변화와 한계를 느껴서 다른 삶을 선택하기로 하는 것까지의 과정도 좋았다. 그 과정 내내 드라마에선 강언니의 '직업'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판단을 했지만, 드라마 전개상 가치판단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강언니가 하는 일이 잘못 되었다거나 강언니가 나중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뉘앙스는 전혀 없다. 강언니의 삶이, 강언니의 생각이 그렇게 그쪽으로 흘러갔다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참 좋다.
이건 윤선배도 마찬가지다. 식물인간인 동생, 동생을 안락사 시킨 어머니, 사채업자가 쫓아다니는 상황, 레스토랑 매니저의 성추행 등 고단한 생활이 윤선배를 더 불쌍하거나 더 나은 인간으로 그려내지는 않는다. 그저 윤선배라는 사람의 삶과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를 다른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추측하는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윤선배가 마지막에 별다른 계획없이 한달이나 여행을 가는 것까지도.
'현실 반영'
정예은이 당한 데이트폭력(이라고 표현하니 너무 약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강언니의 과거와 현재 직업, 윤선배의 안락사 문제와 고학, 그리고 직장 상사의 성추행, 유은재의 보험사기, 엄마의 의존성.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 많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게 '설정값'으로 들어간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캐릭터들이 겪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에 '뭐야 뭐 이런 설정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작은 부분이지만, 드라마 속 동네가 연남동이면 연남동에서 촬영하고 연대면 연대에서 촬영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좋게 느껴졌다.
+
그리고 집주인 할머니.
특히나 마지막화 마지막씬에서 je ne regrette rien을 전축으로 틀어놓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움직이며 요실금팬티를 집어드는 장면이 진짜 너무 좋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슬픈 일이 아니고 노화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늙음이 우리를 추하게 하지 않고 노화가 우리를 초라하게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
굿와이프도 사실 아주 비슷한 맥락에서 좋아했다.
전도연-김서형-나나의 예쁨과 멋있음과 똑똑함. 그리고 청춘시대보다는 냉정해보이긴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들의 시스터후드(ㅎㅎ) 전도연의 대사들은 늘 주옥 같았으며, 김서형이나 나나도 마찬가지로 똑부러지고 아름다웠다. 어쩜 세 명 모두 그렇게 예쁘지, 그렇게 옷을 잘 입지, 그렇게 발음이 정확하지. 호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