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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의 상태

주제없음 2008 / 2008. 11. 11. 08:15

1.


지금의 나는 삶의 그 어떤 부분도 명확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도 없고 심지어 생각할 생각도 없다. 왠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래서 그냥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다. 영화를 전보다 많이 보는 편이고, 음악도 꽤 집중해서 듣는다. 책은 거의 문학류만 읽고, 이런저런 생각을 끼적이면서 조용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나는 요즘 카멜레온마냥 시시각각 생각이, 태도가, 상태가 변하고 있다. 점점 더 세계관은 안으로 안으로 좁아져 내 자신으로 돌아온다. 아주 행복해서 너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울한 것도 아니고, 삶의 의욕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고- 정말이지 '그냥저냥'의 느낌으로.


어떤 면에서 지금의 나는 무중력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딱히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한다거나 뭔가 분명해지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도 없는 상태. 어쩌면 그냥 여러 가지 일들을 덮어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애써 파헤쳐서 힘들게 생각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 나의 회피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누군가가 "사시는 할거니?"라든지 "내년엔 뭐할거야?"라든지 "꿈이 뭐니?" 라고 물으면 할 말도 없고, 말해봐야 설교나 들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귀찮고 무엇인가 분명한 꿈이나 목표나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조금 압박이 되기 때문에 또 스리슬쩍 피하게 되고.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편한 자리, 편한 사람만 찾게 되고 아니면 혼자 뒹굴거리며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현재를 살고 있다.


2.


에그 타르트를 먹었다. 굉장히 맛있어서 감탄을 연발했다. 심지어 "아 행복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에그 타르트를 먹기 위해, 그 에그 타르트 덕분에 살 수 있을까?


인생에 좋은 일들은 많이 있다. 정말 영원히 안 될 것만 같던 코드 진행이 잘 되게 된다든지 F코드가 조금씩 나아진다든지 엄청 느끼하게 맛있는 고르곤졸라 에 풍기를 먹는다든지 두근두근하는 설렘을 느낀다든지 완벽한 비누를 만난다든지 나긋나긋하고 여유롭게 늘어지는 오후를 보낸다든지 이석원의 노래를 듣는다든지 아주 달콤한 낮잠을 잔다든지 마음을 꽉 차게 하는 영화를 본다든지 대화 속에서 '교감'하는 것을 느낀다든지.


그런데 그럼에도 내게는 버릴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이내 쓸쓸해진다. 없으면, 없어지면 많이 때로는 조금 아쉽고 슬프겠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꼭 가지고 갈, 그런 것은 없다. 죽어도 지켜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기분에 서운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겠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 누가 나를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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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 내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우선, 나는 파리의 도서관들을 빠짐없이 뒤졌고, 센 강 우안과 좌안의 모든 헌책 장수들과 얘기를 나눴으며, 그의 책이라면 갖가지 판형의 것들을 모조리 사들였고, 그의 전기 두 권을 탐독했다. 그가 러시아 태생임을 알고 나서는, 청어와 보르시치를 좋아하게 되었고, 싫어하던 보드까를 단숨에 털어 넣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의 출판사의 추근추근 물고 늘어진 끝에, 그가 점심 식사를 하던 장소들을 알아내고는, 그곳을 차례로 찾아다녔다. 브레아가의 <리프>에서 <르 프티 도미니크>에 이르는 그 탐방은 일종의 성지 순례나 다름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모두들 그가 즐겨 앉던 식탁이며 그가 먹던 음식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똑같은 식탁>을 요구했고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

 그의 전기 중 한 권에서, 그의 아버지가 에이젠쉬쩨인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배우였다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는 샤요의 시네마테크에 관람 신청을 해서 에이젠쉬쩨인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 그 아버지의 눈 속에서 아들의 눈길을 느껴 보리라는 바람에서였다. 나는 그가 살았던 그 사람의 거리, 곧 바크 가에 있는 계단은 죄다 밟아 보았다. 심지어는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다던 여배우와 비슷해지려고, 내 머리털을 금빛으로 물들일 생각까지 했다.


p. 9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였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인데, 그가 쓴 책이 서른한 권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이미 여섯 권을 읽었으니, 1년에 한 권꼴로 읽는다 해도 쉰살이면 끝이 난다. 그럼 그 후엔 어떡하나?


p. 14 나는 책읽기를 다시 배우러 온 거야. 그럼으로써, 그 사람이 내게 예정된 유일한 작가가 아니며 나를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다른 작가들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해.


p. 21 게다가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내가 숭배하는 작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 싶으면 우엇에든 흥미를 느꼈듯이, 나는 그 소설에도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


p. 56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웃겨 주고 껴안아 주는 일이었다.


p. 74 <나는 애정 어린 포옹이 어찌나 그리웠던지 하마터면 내 목을 조를 뻔했다.>

(그로-칼랭 중)


p. 75 나는 빨대로 우유를 마셨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p. 76 한 마디로, 나는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p. 82 그가 가고 나면 설거지는 내 몫이었고, 그렇게 접시들을 더렵혀 설거지 거리를 남기고 가는 그가 은근히 원망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 83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뜸을 들인 건 사실이고, 내가 텔렉스 팩시밀리 전화 등을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20세기 말의 여자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당장 모든 것을 갖고 싶어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p. 9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는다.


p. 98 나는 사랑이라는 바람을 쐬다가 감기에 걸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p. 108 나는 모든 일에 구역질이 났고, 하찮은 일상 잡사에 특히 더 신물이 났다. 세상 전체가 마뜩치 않았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뺨을 후려칠 것 같았다.


p. 109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다시 그것이 허사가 되면서 마음의 곡예는 계속된다. 내 삶이 바로 그랬다. ... 영영 그 궁지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 133 그가 데이트를 제안하자, 일거에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평범한 세계, 표준적인 세계로 돌아와 있었고, 그는 아무 남자라도 할 수 있는 일, 즉 여자에게 무얼 마시는 게 좋겠느냐고 묻고 나서 그걸 갖다 주고, 카페 탁자 위에서 여자의 손을 잡거나 여자에게 장미 한 송이를 사는, 그런 일을 하려 하고 있었다.


p. 136 그는 약속 장소며 시간의 결정을 내게 맡겼다. 나는 그런 태도가 마뜩치 않았다. <알사스 학교 앞에서 4시에, 괜찮죠? 그럼, 그때봅시다>라고 시원스럽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러기는커녕 우리는 <어디 아시는 데 있어요? 좋아하시는 게 뭐죠? 카페에서 만날까요, 아니면 찻집에서 볼까요?>라는 말 속에서 헤매고 잇었다.


p. 141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들은 서로 달랐고, <블레이드 러너>는 내가 아주 싫어한 영화였다.


p. 141 묘하게도 그의 뒷모습에 무척 마음이 끌렸다. 그의 걸음걸이는 <나는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걸을을 옮길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며 잘싹잘싹 소리를 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p. 148 엄마에게 전화를 하자, 그래서 스트레스에 대한 처방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어떤 꽃을 생각하면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으렴.>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개양비귀꽃을 생각하며 누워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파니의 처방을 알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통신 판매 상품 목록을 읽어 보라고 했다.


p. 156 파니는 그 가운이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그 사람 물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p. 157 나는 빨래가 안 말라서 안달을 낸 게 아니라, 빨래가 다 말라 있을 그 시간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p. 160 누군가 나와 함께 숨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 잠결에 나에게 안겨 오거나 내 몸에 부딪혀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p. 138 나는 토탈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물론, 떨어진다고 부서지는 건 아니지. 하지만 레몬처럼 노래져서 온종일 스페인 어를 지껄이게 되니까 조심해야 돼.>


p. 138 돌아오는 길에 나는 루카가 토탈과 의사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끔 일본어 두 마디를 가르쳐 주었다. <여보세요>를 뜻하는 <모시모시>와, 물고기가 너무 말썽을 피우면 그 말을 써서 잠잠하게 만들라고 <스시>를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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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공동(空洞)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혼에 거대한 공동을 지닌 첫 세대가 되었어요. 쿨하지 못하면 당장 나가 죽어야 할 것처럼 창피해하고, 가볍고 경쾌하다 못해 그만 양 조절을 못해 천박해져 버린 세대 말예요. p. 16

...실은 거대한 공동이 안에서 텅텅 울려서 불안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p. 17

그러니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딸의 역할을 거부하고 욕심 많은 것을 감추지 않으며 자기 욕망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내숭 떨지 않고 웃고 싶은 만큼 웃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고 울고 싶을 때 우는 씩씩한 딸들은 얼마나 더 많은 미움을 받겠어요? p. 18

내 꿈, 정말로 하고 싶은 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겠다면서 방황할 시간을 갖고 싶어도, 허송세월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어깨 위에 지워진다는 것을 모를 만큼 철없는 나이도 아니고요. p. 23

밥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갖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 투성인 거 아닌가요. 우리가 품고 있는 온갖 걱정은 사실 남에게 꿀릴까봐 그런 거 아닌가요. p. 24

또한 자기계발서는 말랑말랑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서 얄팍한 교훈을 선물합니다.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말들 말이에요. 이를테면 웃으면 복이 온다든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너를 좋아할 거라든가 이성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 호감도가 높아진다든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출세할 거라든가 주변 정리를 잘하면 능률이 올라간다든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든가. p. 29

무서운 말을 집어치우고 그냥 자기를 좀 돌봐주기로 해요.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요리를 하든 친구와 놀든 운동을 하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내 마음을 살찌울 뭔가를 하기로 해요. 이거야말로 진짜 자기계발일 테니까요. p. 31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 힘내고 있는 거, 고생하는 거 다 알아요. 그러니까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아요. 앞으로 고생할 날이 많으니까 너무 고생하지는 말고 살살 하세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때로는 거기서 버티고 서 있는 게 제일 힘들다는 거, 다 아니까. 힘 너무 빼지 말고 우리 잘 버텨내자는 말뿐. p. 35

슬픔이라는 감정을 나약함과 동일시하고, 전염병인 양 혹시 거기 걸릴까봐 결사적으로 피하는 모습들 p. 37

슬픔에서 쾌속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그토록 열렬히 도주하는 것일 테고요. p. 39

패배자란 딱지는 붙이기 싫고,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 말고 95퍼센트로 살 자신도 없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공부부터 하고 봐야죠. p. 39

승자는 모든 것을 다 가져요. 이긴 놈은 무슨 짓을 해도 큰소리 칠 수 있고, 거짓말하는 게 죄가 아니라 거짓말해서 욕먹는 위치인 게 죄니까 더 올라가면 모든 게 해결되죠. p. 40

나 역시 여기서 살아가면서 죽을 수는 없고 혼자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으니 아마도 계속 돈 벌어서 먹고 살려고 싸울 거예요. p. 41

쿨하고 멋진 척해 보려다 몇 날 며칠 속만 쓰린 일을 겪으면서도 나부터 '쿨하게'라는 말 앞에 자꾸만 약해지는 것은, 그 말이 너무나 좋은 말처럼 인식되고 있어서 도무지 그 단어 앞에서 맥을 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 50

어영부영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기분을 즐기지도 말아요. p. 55

내 고통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남의 일처럼 외면하며 자기 자신에게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은, 단기적인 고통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봐준다는 행위 자체를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었거든요. p. 58

모두가 찰떡처럼 의견이 맞는 가족들의 평화란, 분명히 그 밑에 입 다물고 있는 약자가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거였습니다. p. 59

바야흐로 미모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미모 그 자체만으로도 '선함'과 동격의 가치가 된 겁니다. p. 67

지금의 세상처럼 고생해서 돈 버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시대가 있었던가요. 제 손으로 제 밥을 버는 정직한 노동이 이렇게 하찮은 취급을 받던 시대가 또 있었던가요. p. 94

내가 나의 이름을 불러도 우리는 꽃이 됩니다. p. 122

젊은 여자들의 이기심으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준엄하게 야단하는 신문 기사를 읽을 때 반도 읽기 전에 알 수 있는 건 그들이 우리의 자궁을 사회의 소유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p. 127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탈까, 어쩌자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냥 없던 일처럼 하하하 웃고 넘어갈 수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이 나에게는 이다지도 오래 남아 올 누드로 믹서의 분쇄 코스라도 통과하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울까, 어쩌자고 나는 남들이 좋게 좋게 넘어가는 그 많은 일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걸까, 어쩌자고 나는 이렇게나 마음은 약하고 정은 헤픈 걸까, 어쩌자고 이렇게나 시시한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사라져버릴 것들에 매혹되는 걸까....... p. 132

그 상처는 같은 인간인데도 이렇게 나와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이질감과 생경함이 주는 고독감에서 비롯됐던 거예요. p. 133

고로케는 성공을 바란다면 도넛은 구원을 바라요. 그리고 그 구원에 다다르는 길은 구멍을 조금씩 채우는 것뿐인데 그것은 남을 이기는 것, 남 위에 올라서는 것, 남보다 더 갖는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거죠. 다만 시시하고 실없는 농담, 사소한 것에 웃는 것, 고로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일에 즐거워하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그 구멍을 메워보는 것뿐입니다. p. 136

그냥 그 구멍을 영원히 메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 여백을 즐기는 것이 우리 도넛의 살길인 것만 같아요. p. 137

살면서 가장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흠집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을 참 싫어한다는 것, 어렵게 자란 사람이나 고생한 사람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사실이었어요. p. 153

이러한 동화들은 가부장제의 보호 아래서 한 치의 흠 없이 순결하게 자라다가 다른 가부장의 품으로 인도될 때까지 자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소녀들이 인생에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속삭입니다. p. 164
(신데렐라, 백설공주, 소공녀 세라, 빨간머리 앤)

이렇게 여자들끼리 홍해처럼 편을 가르는 단어기 때문에 '걸레'는 슬프도록 남성 중심적인 단어고, 섹스 후 남자의 행보에 따라 결정되는 명칭이기 때문에 우울하게 남성 중심적인 단어입니다. p. 210

하지만 동굴이라는 핑계로 잠수나 타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서적 폭력이에요. p. 227

사귄다는 말로 서로에게 공히 인간도장 찍고 이후에는 상견례하듯 서로의 친구들을 만나서 술한잔하며 얼굴을 익히고, 방과 후나 퇴근 후에 만날 사람과 할 일이 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즐거워하고 주말에 나도 바쁘다는 사실에 우쭐해지는 기분도 조금 사그라들 때쯤이면 어느새 100일 200일째 만남이 되고, 이때쯤이면 이제 슬슬 싸웁니다. p. 229

그러나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 거예요.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 속의 나, 그 사람 때문에 웃었던 나, 그 사람 때문에 울었던 내 눈물, 이런 것들을 추억하는 것을 끝없이 사랑한 겁니다. ... 결국 내가 돌려놓고 싶었던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행복했던 나였던 거예요. 허망한 일이지요. p. 231

6000만 국민이 보는 앞에서 털을 뜯겨서라도 반드시 살아내야겠다는 그 체념, 그리고 때론 체념 그 자체가 강철 같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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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F 2008

얄팍한 취향/얄팍한 / 2008. 10. 19. 23:33

1. 꾸꾸꾸

오랜만에 브로콜리 너마저씨들.

여전히 난 이 분들의 '찌질한' 감수성이 너무 좋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매번 새롭게 아프고 위로하고 달래주는 음악을 만났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직접 듣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은 나를 붕붕 뜨게 만든다.

해가 쨍하지도 않고 바람이 많지도 않으며 춥지도 않은 정말 피크닉에 완벽한 좋은 날씨, 좋은 동행자, 그리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이보다 더 좋기도 쉽지 않다. :-)

양발을 모두 한꺼번에 까딱까딱하는 게 너무 귀여웠던 계피님. (여전히 훔치고 싶은 목소리)
정말 빠져들어 음악을 타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잔디님.
어떨 땐 약간 아이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은근 입담이 좋은 더거님.
과묵한듯 그러나 굉장히 힘차 진짜 멋지다고 생각한 향기님.
무심한 표정으로 명확한 박을 만들어내는 류지님.

공연 정말 좋았다.



2. 속좁은 여학생

브로콜리 너마저, 라이너스의 담요, 뜨거운 감자, 스웨터, Old man river, 마이 앤트 메리, 언니네 이발관. 이 중에는 그냥 밥 먹으면서 또는 책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들은 밴드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 공연을 본 밴드들. 하지만 오히려 공연 때문에 안 좋아하게 된 밴드들도 많다.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걸려 좋아할 수 없었달까.



3. 작은 마음

브로콜리 너마저의 CD 두 장, 언니네 이발관 5집, 스웨터의 CD 두 장을 챙겨서 간 나는. 내 작은 마음 때문에 정말로 사인 받고 싶었던 두 밴드의 사인은 받질 못하고 조금은 생뚱맞게 스웨터의 사인만을 받았다.

브로콜리의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길래 왠지 사인회 줄이 너무 길 것 같아 지레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앉아 라이너스의 담요 공연을 보았는데 라이너스 공연은 너무 짜증났고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메인 스테이지 쪽으로 간 나는 이미 끝난 사인회와 뭔가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 브로콜리씨들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까워.

그리고 Old man river 노래가 너무 시끄러워서 돗자리를 접고 방황하다가 우연히 시간이 맞아서 스웨터의 사인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스웨터 공연 보고 이아립씨 노래에 대해 짜증을 많이 냈던 터라 사인 받으면서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 슬펐다. 오늘 이아립씨의 음을 너무 꺾고 꾸며서 담백한 맛이 사라진 <멍든새>는 매력이 없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이상한 이질감.

언니네 이발관은 사실 이미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지막 곡을 듣지 않고 미리 나가서 줄을 서면 사인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끝까지 다 듣고 갔을 땐 이미 긴 줄이 나있었다. 아마도 30분이라는 사인회 시간 안에 다 해줄 수 없는 정도의 긴 줄. 그래서 그냥 사인하는 책상 쪽에 서서 멤버들 얼굴을 보고 사진을 찍다가 올 수 밖에 없었다. 안타까워.



4. 의외의 사실

언니네 이발관 전에 그 무대에서 공연을 한 밴드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마이 앤트 메리) 어쨌든 자리를 지켜 언니네 이발관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보는 이석원씨의 얼굴(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생각보다 작은 키. 생각보다 단정한 느낌.

5집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부른 뒤 <나를 잊었나요>까지 부른 언니네 이발관. 요즘 매일매일 듣고 있는 앨범이라 정말 CD같으면서도 CD 같지 않았다. 이석원은 여러 모로 노래를 변형시켜 불렀고 은근히 재미있는 말들을 툭툭 던졌다. 기타의 이능룡씨는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정말 기타를 잘 치더라. 열정적으로 기타를 칠 때 폭폭한 머리를 흔드는 게 멋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의외의 사실은 이석원이 귀엽다는 것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잡아 먹고 싶을 정도로. 땀을 닦아내는 손짓이나 리듬을 타는 몸짓, 질끈 감은 눈, 굵게 잡은 미간의 주름, 뾰루퉁하게 내민 입, 앙다문 입, 재치있는 멘트, 무대에서 자유로운 그러나 결코 과장되지 않은 스텝, 단정한 말투, 구슬 만한 공기를 집어 넣은듯한 뚱한 볼. 정말 "귀여워!"를 연발하게 하는 인간이었다. 정말이지 의외의 사실.



5.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정말이지 목소리를 잘 새겨 듣고 싶은데
CD에서는 배제된 숨소리까지 담아 느끼고 싶은데
가사에 깊게 젖어 그 순간에 빠져들고 싶은데

너무 감정이 이입된 나머지 노래방에서처럼 노래하는 사람들
가사와 관계없이 쿵쿵뛰며 박수치는 사람들
나 같은 이웃에겐 방해가 되었다.



6. 아름다운 것

오늘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와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을 보면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소유욕.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인간의 본성에 소유라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귀여운 것?)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갖고 싶어한다. 가지려고 해.

오늘 나는 계피씨의 목소리를 훔치고 싶었고.
이석원씨를 잡아 먹고 싶었고(응?). 이석원의 목소리를 갖고 싶었어.

왠지 퐁당 빠져서 홀라당 넘어 가버린 것 같네.



7. 푸훗

<보편적인 노래>는 좋았지만 그랬지만 왠지 조금 다른 느낌의 곡이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브로콜리의 노래와는 약간 다른.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공감하기 어렵기도 했고 평소의 브로콜리보다 감정이 조금 격앙된듯한 노래. 그래서 살짝 어색했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론 좋았던.

하지만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와 <속좁은 여학생>은 정말 마음에 가득 담았다. 특히 <속좁은 여학생>에서 "빵" 터져 버렸다. 언젠가의 클럽 공연에서 <편지>를 처음 듣고 울었던 것처럼. 벌건 대낮에 훌쩍대고 말았다.



8. 그래서 그런지 현실이 낯설었어

내일부터 시험기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아. 절대 믿을 수 없어. 아직도 나는 그 분위기와 공기, 음악, 감정에 취해 흐느적대고 있는데 집이 어색해. 내일이 낯설어. 




전체 제목부터 소제목까지 정말이지 연관성이 없는.



이석원처럼 서른 여덟이 되어도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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