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는데 왜 갔을까.
계속계속 후회중.
누구나 싫어하겠지만 나도 정말 싫어하는 것: 시간 낭비 - 돈 낭비 - 재미없음 - 건강까지 잃기
1.
어쨌든 드럽게 재미없는 놈 두 명을 만났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몇 번 만난 적도 없다.
그중에 한 명은 특히나 인상이 아주 별로고, 하고 다니는 것도 별로고, sns에서 하는 짓거리도 별로인 놈이다.
나머지 한 명은 좀 찌질하고 소심하고 자격지심이 많아서 오래 대화하는 게 피곤하지만 착하기는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앞의 사람을 A, 뒤의 사람을 B라 칭하기로 한다.
2.
18h30정도에 A와 B를 만나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19시가 안 된 시각에 오징어바다에 갔다.
그 집은 회가 별로 맛없고 연어는 더 맛없는데 가격은 싸지도 않고 양도 많지 않아서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만,
산뜻한 걸 먹고 싶다는 A의 주장에 가게 됐다.
우럭+광어 세트를 시켰다.
3.
A는 입을 닥칠줄을 모르고 계속 떠들어댔다.
B는 닥치지 않는 A가 아주 익숙한듯,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술을 마셨다.
A는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듯 지치지 않고 말을 하면서 계속 내 팔을 툭툭 쳤다.
친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 자꾸 팔을 치니까 짜증이 났다.
4.
A는 7살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는데
둘이 연애를 시작한지 1-2개월 정도 되었을 때 A가 여자친구에게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네가 결혼할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나를 부담없이 떠나라, 고 했다고 했다. 그 말이 자기는 배려 차원에서 한 말인데 여자친구가 매우 서운해 했다고 했다. 혼기가 한참 지난 여자친구를 배려한 것이라고. 자기가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삼십대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단다.
나는 일반적인(그런 게 있다고 치고) 삼십대가 가지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건 잘 모르겠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만한 일을 당신이 부러 여자친구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이렇게 말하면 또 배려였다는 이야기 사이클 반복.) 당신 여자친구가 7살 어린 당신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고, 당신 말고 진짜 결혼하고 싶은 괜찮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당신이 그렇게 허락하든 말든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은 실제로 닥쳤을 때 각자가 생각하고 결정하게 될 일이다. 그렇기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뇌 프로세스가 가능한 인간이라면 사실, 이 정도 말해줬으면 다른 얘기로 넘어가야 정상인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가 한 말과 질문에 답을 했으니까. 근데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 지겨워. 말이 왜 이렇게 많아! 라고도 말하고, 똑같은 얘길 몇 번 하느냐고도 했지만 전혀 안 먹힌다. 회도 다 먹고 매운탕도 다 먹어서 자리를 이동해야 했을 무렵, 20시 30분 정도였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이런 자리에서 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고, 무엇보다도 너무 지루해서 더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
재미없어서 가야 겠다고 말했다. 아 잘못 말한 건가. 재미없다는 말에 A가 집착한다. 내가 재미없어요? 아니 왜??? 아니, 재미가 없다는데 이유가,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5.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22시까지만 있기로 하고 2차를 갔다.
A는 더 혼자서 질주하며 입을 닥칠줄을 몰랐다. 이번엔 예술에 대한 얘기. 동문반복의 연속. 대화는 99.9:0.1 비율로 진행된다. 사실상 대화라고 할 수 없음.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내가 대꾸하거나 말을 할라 치면 자꾸 큰 목소리로 말을 잘라먹어서 몇 번이나 말 자르지마, 조용히 해 라고 말했다. 그래도 닥치지 않는다. 뭐지 입에 귀신 들렸나.
대화가 아니어서 재미가 없고, 그 일장연설의 내용이 구려서 지루했다.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자꾸 나에게 선택하라고. (앞서 말한 문제에선 결혼을 하겠냐 안 하겠냐 였던 것 같고.) 이번엔 무슨 대기업이 당신의 아트를 지원해준다고 한다,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하면 그걸 할 거냐.
근데 질문들이 하나 같이 멍청한 게, 아무런 구체성이 없는 거. 돈의 액수가 아니라 조건이 중요한 건데. 그리고 기업이 제시하는 조건뿐만 아니라 그런 제의를 받는 상황의 나의 조건도 중요한 거고. 내가 지금처럼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고, 작업이 즐거운 상태고 기업의 조건이 좀 안 맞는 것 같다면 거절할 수도 있다. 근데 또 기업의 조건이 다소 안 맞더라도 내가 이런 생활에 너무 오래 지쳐있다거나 갑자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겼다거나 건강상 이유로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됐다거나 하면 또 상황은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 (근데 이 자식 머리 나쁜 걸 내가 먼저 캐치했어야 했는데, 이런 예시를 친절히 들어줘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했다.)
그러면서 예술가의 곤조가 어쩌고. 곤조를 부리지 말라는 둥. 나는 예술가를 존중해, 나도 미술 해봤고 그렇기 때문에 알아. 이딴 소리만 지껄이는데. 아, 전형적인 '필사적으로 해보지도 않고 지레 미술을 포기하고서 작업을 지속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가진 종류'라는 것을 깨달음. you cannot be helped. 하아 집에 간다고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귀찮게 하던지. 차라리 예의를 차리지 말고 그냥 튀었어야 했다. 3시간 정도 같이 있었는데 진짜 세상에 그런 시간+돈+정신 낭비가. 그치만 오랜만에 경험하는 멍청함에서 비롯되는 짜증스러움이었다.
6.
술은 이제 먹지 않기로.
이 날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이틀 후까지도 두통이.
술 먹고 난 다음에 오는 머리의 어지러움이 싫다.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도 되는 건가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