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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윤 선생님과 샘.
한 주에 두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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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ㅂㅂㄴ샘 수업은 너무 지루하다.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의 작업실을 돌며 작업 얘기를 했고, 다시 매점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그 사람은 할 수 있는 말이 몇 가지 없는 것 같다. 많은 말들을 반복적으로 단편적으로 하며, 쉽게 판단하고 규정한다. 미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오마이갓. 나는 쉽게 규정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좋아한다. 이도저도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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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본 거 있어?
아, 영화관 가는 걸 싫어해서.... 아 ! 그거 봤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이요.
그래 그거 어땠어?
음 재밌긴 한데 재미없었어요. 무난히 재밌지만 너무 정직하고 지루했어요. 그렇다고 뛰쳐나가고 싶거나 졸릴 정도로 지루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구나. 팀버튼 영화 좋아해?
음 아니요 딱히.
빅 피쉬 봤어?
아니요.
가위손이나 이런 거 어릴 때 봤을 땐 진짜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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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게 읽는 책 있어?
<ㅇㅇ ㅇㅇ ㅇㅇ ㅇㅇ> (우스개소리 삼아 수업에서 윤 선생님과 읽는 책을 말했다)
이거 알아? (권미원의 <장소특정적 미술>을 보여준다)
아 네 있어요. 끝까지 읽진 못했지만.
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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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봤어?
아니요.
(어쩌구저쩌구) 만신에서 보면은~ (어쩌구) 만신 봤어?
아니요.
진짜 안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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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결론은:
너는 영화도 안 좋아하고 책도 안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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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 낯을 가린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 징후가 없다. 말을 더듬는다거나 눈을 못 마주친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부끄러움을 타는 게 아니다. 낯을 가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여.
나는 대화가 좀 더 섬세했으면 좋겠어.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subtle한 차이들을 느끼면서 단어를 고르고 말했으면 좋겠어.
질문이 많았으면 좋겠어.
당신은 너무너무 따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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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보니, 나는 지금 내 짐이 잔뜩 있는 작업실이 두 개이고
그림만 넣어둔 창고 같은 방이 하나 있고 3층 작업실 복도에도 짐이 남아있다. 😳
짐을 줄이려고 생각, 정리하다보면 시장에서 교환가치 없는 것들만 남게 된다.
사진앨범들, 공부한 노트들, 드로잉북, 필름들, 어릴 때의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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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멋있는 사람을 만났다.
몇 주전에 "바디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가. 라고 변명해본다. 아름다운 몸을 보고 싶어. 아름다운 몸을 만지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
내 작업을 촬영해주었고, 내 작업에 대한 코멘트를 아주 길고 세세하게 해주었다.
그 사람의 그간의 작업들을 보았고, 작업에 대한 코멘트를 오래 했다.
미술 얘기를 할 때 반짝거리는 사람을 처음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본 전시를 다 본 사람이 학교에 참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도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되어 좋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좋은 친구, 좋은 작가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녁을 함께 먹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친구들을 더 불러 e의 집에서 술과 라면을 아주 많이 먹고 잤다.
아침에 숙취가 하나도 없이 9시에 일어나 맥모닝을 나눠먹고 헤어졌다.
e와는 맥도날드에서 헤어진지 3시간 만에 다시 만나 시립에 다녀왔다.
김실비를 두 번 반, 피에르 위그 한 번, 김희천 두 번, 코라크릿 한 번 - 보고 나왔다. 나머지는 다음에 보기로. 김희천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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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지 않고, 상대도 믿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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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선생님이 오랜 제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거나 비틀거리며 손을 꼭 잡고 걷는다거나 하는 일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지금 봐도 매력있고 멋있다. 다만 선생님의 그 모습은 아빠를 생각나게 했달까. 뭐랄까.
좋아하던 노래하는 사람을 딱 한 번 만났던 일도 덩달아 생각했다.
이 블로그를 보고 연락이 왔던, 만났던 사람들도 생각했다.
이번 달 초에 같이 일했던 싱가폴친구도 생각했다. 아주 관리를 잘한 42세. 명동거리를 함께 걸으면 선글라스를 쓴 그의 머리가 사람들 위로 삐쭉, 모델처럼 길고 예쁜 몸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26세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근육을 가진 남자애의 몸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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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파더컴플렉스인가. 틈만 나면 아빠얘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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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11월에 하나, 12월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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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CC 신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