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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28 음악과 영화와 재탕과 결국엔 모두 다 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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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무슨 음악 들으세요?" 또는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하면 그냥 "전 음악 안 듣는데요" 한다. 진짜다. 뭐 그렇다고 어떤 영화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 읽냐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저 도록이나 좀 읽으면 혼자 뿌듯해하고 마는 수준이다. 영화관에는 안 간다. 서점에도 안 간다. 


빅뱅 신곡이 나왔을 적에, 그니까 약 2-3주 전에는 걔네들 노래를 들었다. 그것도 오래 들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정말 아무 음악도 듣지 않았다. 이번 학기에는 오랜만에 벨앤세바스찬 앨범을 몇 개 들었지만 솔직히 너무 싱거운 맛이 난달까. 나도 미치고 싶다. 벨앤세바스찬이든 프란츠퍼디난드든 리버틴즈든 펫샵보이즈든 가을방학이니 브로콜리 너마저니 재탕에 재탕에 재탕에 재탕을 거친 맛이 난다. 단물은 이미 빠지고 또 빠졌다. (물론 여전히 "히야~ 역시 대단해~"할 때도 있다. 난 여전히 if you're feeling sinister 앨범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음악을 들을 환경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음악을 들으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집중이 안된다. 굳이 음악까지 안 들어도 집중이 안돼서 힘든데 정신 사나운 요소를 추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장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없어서 더 들을 일이 없다. 길 걸어가면서 거리에서 나는 소리 듣는 게 더 좋다. 요샌 그런 점에서 음악도 영화같단 생각이 든다.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그렇다. 해를 거듭하며 영화관에 들어가는 걸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고, 이제는 영화관을 싫어하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영화는 집에서 본다. (사실 그냥 별로 안본다.)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좋아하는데 그럴 때에 들을 만한 것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상태이다. 나는 완전히 고갈된 상태인 것 같다. 


작업실 정리를 하려고 이 씨디 저 씨디 넣어가며 듣다가 언니네이발관 앨범을 들었다. 꿈의 팝송. 아직도 앨범 커버만 보면 이 앨범의 첫곡 정도는 맞출 수 있다. 그치만 듣다가 괜찮은 노래의 제목은 맞추지 못하더라. 울면서 달리기가 여전히 괜찮더라. 옛날에도 좋아하던 곡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그래 6집이 나온다고 했었지 ! 기억이 났다. 그치만 쉐쿄바레 들어가자마자 연기소식부터 떠있더라. 책상은 다 치웠는데 작업하기는 싫어서 남의 작업 스케치를 보기로 했다. 전대정의 홈비디오를 보면서 강정석의 홈비디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뻔한 얘기지만 무엇이 작업이 되고 무엇이 취미가 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다시금. 그러면서 또 구조를 생각하고. 아 이게 아닌데. 어쨌든 작업스케치 보다가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월요병 또 하게 되면 가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치만 그래도 이발관에게서 졸업하고 싶다.(학교도 졸업하고 싶다.) 설레고 싶다. 엄청엄청 매력적이어서 마음을 휘리릭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 어디 없나. 나 그냥 게을러서 이렇게 재탕으로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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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의 글


p.38 

내 친구인 여성은 인도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타누(Tanu)였다. 하지만 이 순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 친구가 아프가니탄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타누를 이미지로 의식하게 되었다. 


p.38

이러한 순간에 감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그건 내 의도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 내가 그걸 의도해야 했었나?"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수용자 측이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럴 때 타누의 실제 정체성은 보는 이가 수용하는 그녀의 정체성과는 무관하다. 어떻든 이미지는 늘 타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향은 보는 이의 분별(differentitation)을 요구한 것이고, 두 번째 방향은 보는 이한테 수용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맞아. 의도한 거야. 전에 그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그걸 의도하게 되었을 테니까."


p.43

요약은 보통 읽기도 빠르고 쓰기도 빠르다. 시간의 틀은 요약을 필요로 하는 문화와 관계가 깊다. 



벨러 타르(Bela Tarr)의 결정. 


p.47

롤랑바르트는 글이 오랫동안 안 써질 때 이용하던 다양한 기술 중 하나로 출판하지 않을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p.49

<템퍼 클레이>는 제작 과정에서나 작곡에서나 저항과 변명 사이의 경계선의 발현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마침 시와 음악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장치들을 이용했다. 압운(rhyme), 제창(unison), 빠르기(speed), 성조(voice), 반음계적 화성 변화(chromatic harmonic shift)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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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그린블라트의 글


p.66

"하지만 네 마음도 그러하냐?" 그는 적어도 코델리아로부터 공식적인 복종 이상의 무엇을, 권위에 대한 복종과 함께 웨일랜드의 설명 끝에 묘사된 거의 성애 같은 갈망이 묘하게 뒤섞인 무엇을 원한다.



_최빛나의 글

p.107

김성환의 작품은 위와 같은 재앙적 사건들을 기록하지도, 그것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르포르타주 형식과는 거리가 먼 그의 작업은 심지어 비평의 한 형식으로조차 기능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김성환이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일련의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것인데, 이때의 현실이란 소통의 형태가 변칙적이며 이야기의 파편들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한 곳이다. 누가,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에 대한 서술이 없는 이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은 감상자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p.115

이 같은 상황에서 퍼포먼스 작업 등 살아있는 노동력을 그 재료로 삼는 모든 작품이야말로 가장 모호한 대접을 받게 된다. 


p.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 이후의 우리'의 투쟁은 단순히 (거대하고도 만질 수 없으며 다루기 까다로운) 자본주의의 망령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억압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곳에서마다 우리가 마주하는 구체적인 조건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유월>


p.117 

김성환은 <유월>을 제안하면서 "공적 리듬을 배반"하는 것이 <유월> 활동의 핵심 주제라고 내게 말했다. 


p.120

내가 이 순간 어떤 내용을 제시하고 공유하고 싶은지, 그러고는 내 생각을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구들끼리의 비공개 모임 안에서일지언정 퍼포먼스와 강연이 반복되는 이 훈련은 꽤나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좌절을 안겨주기도 했다. 진행 과정은 이랬다. 우선,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평소 얼마나 자주 그저 반응(reaction)-응답(response)과는 별개의 의미에서의 반응-으로 말을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둘째, 제한된 시간 틀 안에서 주어진 수단을 가지고 (이왕이면 말과 입만을 사용하진 말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구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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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스미스의 글


p.151

그러나 미디어의 힘이 점점 확산됨에 따라, 미디어를 통해 '전 지구적인' 문화와 관계를 맺는 것과 우리가 사는 지역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 사이의 간극은 더 넓어지는 듯하다.



p.153

이 사례는 우리의 지역 환경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얻은 의미와 미디어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_

김성환과 dogr의 대화


p.174

김 "한 대륙에서 온 사람들은 다른 대륙의 시간적 흐름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시간 흐름대로 상대를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간의 흐름에 대한 본인의 무지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둥을 노래하는 법을 배울 시간이 없듯이."



김 "1:1 비율이라는 발언은 생산이란 것에 과거에 이미 만들어진(ready-made) 생산물이 쓰인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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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기록광/메모 / 2015. 5. 28. 21:16


안규철,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중





정지현-이주요 렉쳐퍼포먼스. 그니까 렉쳐퍼포먼스가 무엇입니가.

왜 다들 렉처퍼포먼스레처퍼포먼스하는건지참말로궁금하네요.





태조님









잘 하 자 으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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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5

기록광/메모 / 2015. 5. 25. 12:37

무슨 매력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나 젊은 선생들, 기가 세지 않은 선생들은 벌벌 긴다. 

너랑은 말이 너무 잘 통하고 우리는 친구야 

라는 걸 어필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작년 이모선생과 지금 구모선생. 


어려운 말 하려고 해서 그런가. 알 수가 없네 정말

나는 또 왜 이렇게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와타야 노보루 같아 쟤는. 


얄팍한 사람들의 얄팍한 팔랑거림 

자신의 밑천이 드러날 것 같아서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팔랑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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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얼마나 많은 청 ! 춘! 의 내 청 ! 춘 !의 노래로 기억될까. 

다시 듣는데 참 아련아련 

나의 이십대여 안녕 - 이런 느낌이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맘보다는 밤을 더 쉽게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소녀인 척 하고 싶지 않다. 

어린애가 아닌데 어린애인 척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도 않다. 

잘 살고 싶다 앞으로도 


세상에 부럼 없어라 ! 외치면서 

우리는 행복해요 ! 하고 

뭔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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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6

기록광/메모 / 2015. 5. 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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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 뒷목이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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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와 요즘 얘기하는 게 즐겁다. 

맛있는 꼬리찜과 막걸리 

국수사리가 참 좋다 

조그만 청치마에 노란빛으로 알록달록한 마크제이콥스 셔츠를 입었다

구불구불한 머리는 여전하다 

영등포 아저씨들은 담배피는 친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우리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문래동 한 가운데 있는 공간으로 

작가 인터뷰하러 갔다

지도를 들고서도 조금 헤맸다 

작가는 지각중이고 

골목 건너편 기계제작 가게의 아저씨는 손토시를 한 채 

유리창 앞을 서성이며 통화를 길게 하신다

아저씨의 움직임에 한 번씩 고개를 들어 확인하게 된다

작가가 등장하는 건가 싶어 자꾸자꾸 밖을 내다보지만 

이십분이 되도록 코빼기도 안 보인다 

지각하는 것은 뭐 그래 괜찮다 



멋있는 척 하려고 줄을 나눠쓴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근데 또 뭐 아무렴 어때 멋있는 척인지 시처럼 하려는 것인지 쿨한 척인지 짜증나서 신경쓰기도 귀찮다. 


빨리와라요 작가님. 


꼬리찜 진짜 맛있었다 다음에 애인을 데리고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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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기록광/메모 / 2015. 5. 12. 08:53



매번 하는 착각은 내가 낯선 이들과의 교류-관계맺음-공감 같은 걸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야 아니는 걸 깨닫는다. 아니라고 넌 아니야. 안 그래.

이것은 재작년 '기숙사 친구' 시도와 똑같은 실수. 


(여전히 재작년을 쓸 때마다 예전에 누군가가 제작년이 아니라 재작년이라고 달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맞춤법을 꼭 한 번씩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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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er videotape performance Untitled (2003), 60 minutes in duration, Fraser recorded a hotel-room sexual encounter at the Royalton Hotel in New York, with a private collector, who had paid close to $20,000 to participate,[10] "not for sex, according to the artist, but to make an artwork."[11] According to Andrea Fraser, the amount that the collector had paid her has not been disclosed, and the "$20,000" figure is way off the mark. Only 5 copies of the 60-minute DVD were produced, 3 of which are in private collections, 1 being that of the collector with whom she had had the sexual encounter; he had pre-purchased the performance piece in which he was a participant. The contractual agreement, arranged by Friedrich Petzel Gallery, outlining the performance posed as a medium questioning male power in the art world connecting it to female prostitution and art making.

Posted by hamag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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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라는 공간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왠지 부정적인 어조인 것 같아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그래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듯 하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전시) 공간 중 하나라고 우선 머릿속에 입력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 여기”의 영문명이었다. “nowhere”은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내게 “노웨어”로 읽힌다. 예전 대학의 단과대 학생회 이름이 “no where? now here!”이었던 것을 기억했다. “here&now”가 아닌 “nowhere”는 자조와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전시 공간은 듣던 대로 멀고 높았다. 그 거리와 경사 그리고 동떨어진 위치는 자연스럽게 내게 의지와 노력을 요구했다. 일단 그 골목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곳이 얼마나 높고 멀든 간에 나는 그곳에 가야만 했다.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가기까지 한숨을 돌려야 했다. 이 갤러리에서 저 갤러리로 집집마다 십분씩 휙 둘러보고 나올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여기”는 공간 자체가 일종의 작업일 수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맥락과 동기, 의도는 전부 다르지만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의 200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의 작업 <바타유 모뉴먼트 Batailles Monument>를 떠올렸다.  일반적 미술 관객의 입장에서 이질적이고 낯선 어떤 장소에 들어간다는 것이 유사하다는 점 외에는 사실 비슷할 게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를 관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가파른 오르막을 걷는 것(“지금 여기”)과 정해진 시각에 운영되는 택시를 타고 카셀 외곽도시로 가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한 번 오르고 나면 다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공간에서 머물며 전시를 평소보다 더 유심히 찬찬히 보게 된다는 것(“지금 여기”)와 택시 운영 간격 때문에 그 동네에 얼마간 머물러야 한다는 것(<바타유 모뉴먼트>) 등이 공통점이라 생각했다. 물론 야기되는 결과는 다르다. <바타유 모뉴먼트>에서는 그것이 그 동네와 동네 사람들과 관객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을 다룬다면, “지금 여기”에서는 공간이 위치한 장소의 조건들이 전시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는 것 같았다.

  힘들게 오른만큼 전시는 좋아야 했다. 홍대 어딘가의 카페에서 본듯한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로비처럼 보이는 널찍한 공간에서는 이십여 명에 사람들이 수업 같은 걸 하고 있었다. 전시를 아주 천천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기에 이 글에서는 그 공간을 제외하고 말하기로 한다. 시원하게 트인 길쭉한 첫번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받았던 느낌은 왠지 모를 쳥량함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텔레비전 같은 것이 식물과 함께 선반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화면이 보였다. 전체적인 공간의 빛깔은 다소 파랗게 밝은 느낌이었다. 그 빛 아래 모든 것은 명징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화이트큐브”화 되지 않고 본래 그 공간이 가지고 있던 모습을 남겨두면서도 전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정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던 오래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할 때, 공간의 느낌과 역사성 등이 너무 많이 남아있거나 영향력이 센 나머지 작업을 보는 데 방해가 되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문화역284가 되기 이전의 서울역에서의 전시들이 그랬고 영등포 커먼센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데 “지금 여기”는 오히려 공간에 남아있는 요소들이 작업에 활력을 주기까지 하는 듯 했다.

  나무 합판 위에 두 개씩 묶여 이리저리 배치된 김재연 작가의 <4810 DAYS>는 눈부신 조명을 받으면서 뭔가 싱그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확실하지만 언뜻 무심하게 인화지를 벽에 고정한 모습도 작업 이미지와 내용에 걸맞다. 그 옆의 오보람 작가의 <노모차> 또한 유사한 느낌을 이어간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업의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평소라면 “시리즈를 찍었네” 하고 슥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사진들이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잡아아 끄는 부분이 있었다. 인물 없이 “노모차”만 찍은 사진이 내 시야보다 조금 낮게 배치되어 있을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주차금지를 위한 짱돌들이 딱 있을만한 위치에 있다. 변상환 작가의 작업들이었다. 합판으로 가려놓은 부분과 달리 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윗부분에 창문이 있어 “짱돌”의 위치와 느낌에 영향을 준다. 또한 그 옆 벽면에는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하단부에 있어 “짱돌” 작업에는 좋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에만 나무를 대어 전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적절하게 시선에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세심하게 배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 벽에는 유리와 작가의 <조경사진>도 한 점 있었는데, 처음 그 사진을 보았을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신기하고 기이한 풍경이긴 하지만 건물 사이에 끼인 나무의 사진은 어디에서든 보았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걸음을 더 이동했을 때 두번째 방 벽에 걸린 같은 작가의 다른 사진이 문을 프레임으로 두고 첫번째 방의 사진과 같이 보였을 때,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란히 보이지만 앞뒤로 공간의 격차가 있는 채 놓인 두 작업이 묘하게 작업의 주제와 연결되면서 그냥 사진에서 재밌는 사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민 작가의 <YES WE CAN>도 작업의 배치가 돋보였는데 한 벽면을 가득 메운 경찰의 채증사진이 조금 무섭게 다가오면서 작업의 주제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공간 천장 쪽 들보나 옆 벽면 윗쪽 등 예상치 못한 위치에 놓인 사진들이 작업의 메세지를 보다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결국 어떤 면에서 이 전시 리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여기”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그 공간을 가는 여정과 그에 따른 마음가짐이나 다짐들, 공간 내부의 느낌과 공간과 작업 사이의 관계 등이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면서 만약 이 작업들이 다른 공간에 놓였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보여지는 방식까지 작업과 전시의 일부임을 다시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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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기록광/메모 / 2015. 4. 27. 22:11

공부도 작업도 다 똑같다 

결국 잡아다 책상앞에 앉혀야 하는 건, 앉히는 건 나여야만 한다. 으으 공부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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